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마지막 대결에서 다섯 시간에 가까운 혈투 끝에 아쉽게 불계패했다. 이번 대국을 통해 인간의 아름다운 바둑을 지키겠다고 천명한 이세돌 9단은 투지를 불사르며 알파고와 맞서 싸웠다.
▲ 이세돌 9단(왼쪽)이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마지막 대결이 끝난 후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호형 기자 leemario@sporbiz.co.kr
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5시간여의 혈투를 벌였으나 280수 만에 흑 불계패를 선언했다.
제4국에서 백으로 승리를 거둔 이세돌 9단은 흑을 잡고 이기고 싶다며 이번 경기에서 흑돌을 선택했다. 마지막 대국인만큼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비쳐졌다.
이세돌 9단은 지난 대국에서 승리했던 '선(先) 실리 후(後) 타개' 전략을 들고 나왔다.
지난 경기에서 패배한 탓인지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이 우상귀 소목에 첫 수를 두자 장고를 뒀다. 이후 이세돌 9단은 우하귀 접전에서 40여 집의 큰 집을 형성해 주도권을 잡아갔다. 그러나 상변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움츠러들면서 알파고에 추격을 허용해 형세가 불투명해졌다.
결국 이세돌 9단은 좌하귀 백 모양에서 수를 내려했으나 알파고의 정확한 응수에 오히려 손해를 보고 말았다. 1분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집중력을 발휘했던 이세돌 9단은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했으나 아쉽게도 격차를 줄이지 못하며 280수 만에 흑 불계패를 선언했다.
▲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세돌 9단 vs 알파고의 제5국 기보. 그래픽=연합뉴스
이세돌 9단은 대국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챌린지 매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쉽다"며 "여러모로 아쉬웠지만 저의 실력에 부족함을 느꼈던 경기였다. 응원과 격려를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발전할 수 있는 이세돌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공지능이 승리한 이번 대국은 다양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이세돌 9단은 1승 4패의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였지만, 진화된 인공지능을 꺾은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됐다. 1,202대의 슈퍼 컴퓨터를 가동시킨 알파고와 맞선 이세돌 9단은 제4국에서 불계패를 받아 내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최근 주춤했던 이세돌 9단은 매 경기마다 새로운 작전과 변화를 보여주며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4,000년 바둑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고독한 승부를 벌인 이세돌 9단은 중압감 속에서도 집념과 창의적 발상으로 멋진 승부를 펼쳤다.
인공지능의 역사에도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바둑은 체스와는 달리 인공지능의 성역으로 불리며 불가능한 도전으로 생각돼 왔다. 정해진 말과 규칙이 있는 체스와는 다르게 바둑은 경우의 수만 해도 10의 170승에 달할 만큼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 판 후이 2단에게 5:0 완승을 거둘 때도 이세돌 9단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은 알파고 였다.
그러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인간 최강으로 불리는 이세돌 9단을 네 차례나 이기면서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스스로 판단ㆍ추론ㆍ학습하는 기능을 갖췄고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빠른 시간안에 학습하며 인간의 직관까지 모방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6개월만에 전 세계를 인공지능 신드롬에 빠뜨릴 만큼 가파른 성장 속도였다. 인공지능을 통한 제4차 산업혁명도 거론될 정도로 강력한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통해 다양한 부가산업이 창출됐다. LG전자는 이세돌 9단의 스폰서 후원을 통해 신형 스마트폰 G5를 알렸고, 다양한 IT 기업들이 생중계를 통해 반사이익을 받았다.
대회를 개최한 구글은 가장 큰 수혜자가 됐다. 우승 상금 및 대국료를 포함해 약 20억원도 쓰지 않은 구글은 알파고의 실력을 입증하는 것으로만 30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IT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결은 전 세계에 인공지능 신드롬을 몰고 왔다"며 "인류의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과학기술에 어떤 자세로 대응해야 하는 지를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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