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7월쯤 재력가인 A(81)씨의 앞에 자신을 모 의료재단 이사장이라고 밝힌 이모(62·여)씨가 접근했다. 이씨는 치매를 앓아 판단력이 흐린 A씨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친구”라고 속여 환심을 샀다.
A씨가 상속받은 부동산을 놓고 형제들과 벌이고 있는 골치 아픈 소송도 이겨줄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이씨를 철썩 같이 믿게 됐고 그가 하라는 대로 ‘모든 재산을 A씨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유언장과 양도증서를 써줬다. 2014년 1월에는 “여생을 함께하겠다”는 이씨와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모든 것이 재산을 뜯어내기 위한 계략이었지만, 정신이 혼미한 A씨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씨는 이후 8개월간 이모(76)ㆍ오모(61)씨와 공모해 A씨가 살던 서울 종로구의 자택과 토지, 충북 진천과 경기 광주의 토지, 미국 펀드 등 90억 원대 재산을 모두 처분해 59억 원 상당을 손에 쥐었다. A씨 주소를 멋대로 옮기고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 가족들과 연락도 차단했다.
그리고는 “당신 재산을 지키려면 헤어져야 한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토록 해 그 해 10월 법적으로 남남이 되자 A씨 곁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도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수사망은 피하지 못했다. 경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의 혐의로 이씨를 구속하고 공범 또 다른 이씨와 오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
조사결과 이씨와 공범 이씨는 과거부터 부부행세를 하며 사기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검거될 당시 서울 동대문의 고급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A씨의 재산으로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와 땅을 대거 사들이는 등 34억 원 상당의 부동산 투자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그러나 “사귀다 결혼한 것”이라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A씨는 이씨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분통을 터뜨리다 지난 달 중순 삶을 마감했다. 미국 등지서 떨어져 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지난해 12월 아버지와 이씨의 혼인무효소송을 제기,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들은 혼인 자체를 무효화하면 친족 간 재산범죄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친족상도례’규정을 적용 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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