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대표 이세돌(33) 9단의 아름다운 도전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들썩였다. 이 9단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알파고에게 1∼3국에서 내리 패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알파고에게 5대 0으로 완패하는 것 아니냐는 절망적인 분위기에서도 이 9단은 끈기와 정신력으로 버텼다. 알파고의 약점을 파고들었고, 묘수를 던지며 반격의 1승을 따냈다.
앞서 이 9단은 두 차례 대국에서 흑을 쥐고 모두 불계패 당했으나 승부사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돌가리기를 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흑번을 먼저 쥐겠다고 선언했다. 4국 후 기자회견에서 "백으로 이겼으니 마지막에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어치가 있어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제안을 구글 딥마인드도 받아들이면서, 5국은 이 9단의 흑번으로 시작된다. 15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이 열린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중국 룰로 진행된다. 프로기사들은 일반적으로 중국 룰에서 흑·백 선택권이 있는 경우 백을 더 많이 선택하는 편이다. 중국 룰은 덤이 한국 룰(덤 6집반)보다 1집 많은 7집반으로 백이 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바둑은 흑이 먼저 두는데, 먼저 두는 쪽(흑)이 유리하므로 나중에 둔 쪽(백)에 그 불리함을 보상해 주기 위해 이 같은 규칙이 만들어졌다.
구글 딥마인드 관계자들은 "알파고는 백을 잡았을 때 좋은 내용의 바둑을 두며 승률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한종진(37) 9단도 "알파고가 백을 잡았을 때 좀 더 안정적인 것 같다"며 "백을 잡았을 때는 안정적으로 따라가는 스타일인데, 흑을 잡았을 때는 약간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를 불리한 상황에 가져다 놓은 이 9단의 결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9단이 연구한 흑번 포석, 알파고에게 승리할 수 있는 비책이 무엇일는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덤을 1집 더 주고도 선착의 효를 살려 흑번 포석을 준비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9단은 4국 때처럼 단단하게 두며 실리를 차지한 후 알파고를 흔드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목이나 체스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컴퓨터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지난 50년의 역사에서는 인간보다 기계의 승리가 많았다. IBM의 AI 슈퍼컴퓨터 '딥블루'는 1997년 체스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으며, 2011년에는 IBM의 또 다른 컴퓨터 '왓슨'이 2명의 인간 챔피언을 꺾고 퀴즈쇼에서 우승했다.
인간에게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바둑마저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는 세상이 오는가. 인간과 기계의 역사적인 대결의 중심에 이세돌 9단이 우뚝 서있다.
알파고가 이 9단에게 한 번이라도 졌다는 것은 인공지능도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인간은 진화하지만, 기계는 인간이 진화한 다음에야 업그레이드될 수 밖에 없다. 불굴의 의지와 멈출 줄 모르는 도전, 그것이 인류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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