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복지공약 비판하다 “배신의 정치” 찍혀
총선서 생환할 땐 차세대 주자로 떠오를 듯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계파 스펙트럼만 따지면 친박계 핵심에서 비박계 대표격으로 이동이 가장 컸던 정치인이다. 2005년 1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삼고초려 돼 임명됐지만 10년이 지난 2015년 6월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그를 지목한다.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박 대통령에게 직언하던 유 의원은 그렇게 원내사령탑에서 평의원으로 내려왔다.
유 의원은 사실상 현 정부 출범의 초석을 쌓은 일꾼이다. 2011년 7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대표로 최고위원(2위)이 된 그는 ‘선관위 디도스 사건’이 터지자 최고위원직을 던지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문을 연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단장으로 중책을 역임하기도 했다. 비록 패한 경선이었지만 당시 어려움으로 유 의원은 자신의 치아 대부분을 임플란트로 갈아 끼워야 했다.
유 의원은 대표 비서실장 때부터 “할 말은 하겠다”며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2011년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과 빨강색으로의 당색 변경에 반대, “한나라당의 이름으로 총선에서 심판받자”고 주장한다. 대선 후보가 된 박 대통령을 향해선 “제대로 된 보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주변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선 외교라인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 “이거 누가 하냐.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박계는 가장 아픈 부분을 콕 집어 말하는 유 의원을 불편해 하기 시작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친박계가 유 의원을 대구시장 후보로 밀었고, 지역 정가에선 이를 ‘유승민 찍어내기’의 서막으로 해석했다.
유 의원은 지난해 2월 2일 친박계가 전폭적으로 민 4선의 이주영ㆍ홍문종 조를 꺾고 원유철 당시 정책위의장 후보와 원내사령탑 경선에서 승리한다. 이후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당ㆍ청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공무원연금 개혁에는 성공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친박계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다. 정부가 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 시행령을 만들 땐 국회가 제동을 걸 수 있도록 고친 것을 청와대와 친박계는 항명으로 본 것이다.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8일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내대표 사퇴 이후 박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 심판해달라”고 하면서 유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에 진박 예비후보들의 출현을 암시했고, 실제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들이 ‘진박’을 내걸고 잇따라 출마하면서 대구는 현역 의원 대 진박 예비후보 간 공천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한때 동지였던 친박계는 유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살아 돌아올 땐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평적 당ㆍ청관계”를 외쳤던 유 의원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신보수 주창자여서 새누리당 지지층과 중도층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염려가 깔려 있었다.
서상현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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