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의 대국에서 감동적인 첫 승을 올린 뒤 자신감을 찾은 이세돌(33) 9단은 14일 낮 동갑내기 부인 김현진씨, 딸 혜림(10)양의 손을 꼭 잡고 오랜만에 호텔 문을 나섰다. 그 동안 구글이 제공한 숙소인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두문불출했던 그는 이날만은 호텔 주변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과 조금 이른 봄 소풍을 즐겼다. 이 9단은 3연패 후 1승을 올릴 때까지 자신보다 더 가슴을 졸이며 응원해 준 아내와 딸에게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표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 속은 15일 열릴 마지막 대국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 9단은 이날 오후3시15분 가족과 함께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이 9단은 호텔 로비에서 한국일보 기자와 만나 “남은 시간은 숙소에 있으면서 5국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이 없는 날이지만 그는 1~4국 때처럼 검은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현진씨와 혜림양은 흰 티셔츠에 얇은 회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마지막 대국에서 또 다시 알파고를 이길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9단은 “네”라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한국기원에서 구글과 재대결을 추진 중인 것에 대해서는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이 9단은 이후 다른 취재진이 몰려드는 것을 피하려는 듯 딸부터 살뜰히 감싼 채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 9단은 이후 숙소에서 혼자 마지막 대국을 준비했다. 이세돌 9단의 친형이자 조언자인 이상훈(41) 9단은 “세돌이는 평소에도 혼자 대국을 준비한다”며 “알파고가 어떤 계산 과정을 통해 그 순간에 그 수를 뒀는지 4국 경기 내용을 집중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의 계산법을 파악하게 되면 모든 수에 대해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세돌이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상훈 9단은 동생이 3연패 후 첫 승으로 부담감을 던 만큼 마지막 대국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3국이 끝난 뒤 동생과 통화를 했는데 이미 진 것에 대해서는 승복을 하되 우리끼리는 ‘다음 판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며 “알파고는 인간의 직관이 없어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이상훈 9단은 동생이 마지막 대국에서 흑돌을 잡는 것과 관련해 “세돌이는 알파고가 선호하는 백을 넘겨 주고 시작해도 이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라며 “마지막인 만큼 그 동안 궁금했던 것을 다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세돌이는 도전을 피하지 않는 승부사”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기원은 현재 구글 측에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재대결(리턴매치)을 요청한 상태다. 구글은 다음 주 중 이에 대한 답변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리턴매치가 성사되더라도 이 9단이 이를 받아들여야만 대국이 열린다. 이 9단은 이번 대국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4일 “리턴매치는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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