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식품첨가물 표기에 ‘천연’과 ‘합성’의 구분이 없어진다. 대신 감미료, 발색제, 산화방지제, 착색료, 향미증진제 등 31개 용도로 분류해 표기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 개정 고시(안)’을 행정 예고했다. 업체들이 식품첨가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을 부추겨 마케팅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천연첨가물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합성첨가물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소비자가 많은 이상 기본 정보는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첨가물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 붙을 전망이다.
식품첨가물, 607종 허가돼
식품첨가물을 뺀 음식을 먹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만큼 식품첨가물은 우리 식생활에 자리잡았다. 미국에서는 1만 여종의 식품첨가물이 허가를 받아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첨가물 공전에 수록된 첨가물은 화학적 첨가물(405종)과 천연첨가물(197종) 등 607종이다. 사용목적에 따라 향미증진제(L-글루타민산나트륨 등), 발색제(아질산나트륨 등), 감미료(아스파탐 등), 표백제(아황산나트륨 등), 착색료(식용 색소 등), 보존료(소르빈산 등), 유화제(카제인나트륨 등)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은 감칠맛을 내는데 사용하는 대표적인 식품첨가물로 사탕수수 원당을 주 원료로 발효해 생산된 것이다.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에서도 안전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식품첨가물에 대해 소비자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식약처가 실시한 ‘소비자의 식품안전 위협 요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식품안전 위협요인으로 식품첨가물(34.5%)이 1위에 꼽혔다. 뒤이어 환경호르몬(26.4%), 농약(13.5%), 유해미생물(12.2%), 중금속(9.3%) 등의 순이었다. 소비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식품첨가물은 이산화황(20.8%), 아질산나트륨(18.1%), 식용색소류(16.1%), L-글루타민산나트륨(15.7%) 순이었다.
식품업계는 “식품첨가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건강에 나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 비타민B12가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는 소비자는 97%였지만, 정식 명칭인 ‘시아노코발라민’으로 표기할 경우 9%에 불과하다는 결과도 있다.
내년부터 ‘합성’, ‘천연’ 첨가물 표시 없애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식품첨가물을 화학적 합성물, 천연첨가물, 혼합제제류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은 첨가물 용도에 따라 직접첨가물, 2차 직접첨가물, 간접첨가물로 구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식품첨가물, 가공보조제, 착향료, 추출용매, 영양강화제로 나눈다. 일본은 천연첨가물이라는 표현 대신 ‘천연향료기원물질’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 식품첨가물 표기 기준이 바뀌면 ‘합성’과 ‘천연’이라는 단어를 표기하지 못하게 된다. 대표적인 합성 조미료인 L-글루타민산나트륨(MSG), 합성아질산아트륨(발색제), 합성감미료(아스파탐), 합성착향료, 산도조절제 등도 사용목적만 표기된다. 일부 업체가 식품에 향미증진제인 L-글루타민산나트륨(MSG)을 빼고 유사한 기능의 다른 첨가물인 식물성단백가수분해물(HVP)을 넣고도 MSG를 첨가하지 않았다며 무(無)첨가 마케팅을 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품첨가물을 표기하며 합성과 천연을 구분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합성이냐 천연이냐라는 구분은 소비자의 오해를 부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백형희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화학적 합성물에 대한 식품업계의 네거티브 마케팅 확산과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식품산업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고 했다.
박성권 세종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천연식품은 좋고 가공식품은 천연식품보다 몸에 덜 좋거나 나쁘다는 2분법은 잘못된 것”이라며 “첨가물이 든 가공식품이라고 해서 몸에 더 나쁘다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반면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부회장은 “식품첨가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합성과 천연이라는 구분마저 없애버린다면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 받는다”며 “표기법을 바꾸기보다 식품첨가물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현숙 컨슈머리서치 대표도 “천연조미료가 좋고, 합성조미료가 나쁘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 천연-합성 표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 개정고시안>
<식품첨가물 31개 용도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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