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에 고픈 모습이었다.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따금씩 불안한 눈빛을 들키고야 마는 유약한 캐릭터. 배우 송중기(31)는 2013년 군 입대 전까지 모성애를 자극하는 역할에 전념했다. 푸른 제복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카메라 앞을 떠난 3년 뒤 그는 미소년에서 남자로 진화했다. 사내다움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여심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전역 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는 조국과 군인의 명예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특전사 유시진 대위로 변신했다. 드라마의 배경은 삭막한 전장(戰場)이나 유 대위의 입에선 달콤한 꽃이 피어 오른다. 온전한 사랑을 쟁취하기로 작심한 듯한 그의 모습에서 여성 시청자들은 남자를 본다.
유시진의 마음이 향한 곳은 의사 강모연(송혜교)이다. “되게 특이하네, 되게 예쁘고.” 눈부신 외모에 한 번, 집에서 배달음식이나 시켜먹자는 그녀의 털털함에 두 번 반한 듯 유시진이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대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함께 극장을 찾은 그녀에게 “난 태어나서 지금이 제일 설레요. 미인이랑 같이 있는데 불 꺼지기 직전”이라며 속삭이거나 “같이 있고 싶은데. 같이 있고 싶다고 계속 말했는데”라며 욕망 섞인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표현한다. 여성 시청자들이 무장해제를 경험하는 대목이다.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가 이전 작품 ‘파리의 연인’과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등에서 갈고 닦아온 특유의 낯간지러운 비현실적 대사들은 유시진의 입을 타며 현실에 안착한다.
찰랑대던 앞머리를 짧게 자른 것 외에 송중기의 외모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타고난 뽀얀 피부와 앳된 얼굴은 순정만화 주인공의 모습이다. 전작들에서 유독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어린 배역을 맡은 송중기의 소년 외양은 ‘태양의 후예’에서도 여전하다.
그는 MBC 드라마 ‘트리플’(2009)에서 스무 살 쇼트트랙 선수 지풍호로 등장해 짝사랑하는 고등학생 하루(민효린)를 향해 애교만점의 표정을 선보였다. 이미 그의 나이 스물 다섯 살 때였다. 유일한 친구이던 강아지 마음이와 교감하는 고등학생역(‘마음이2’ㆍ2010)을 맡았을 때는 스물 여섯이었다.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으로 선보인 영화 ‘늑대소년’(2012)에서도 기이한 능력을 지닌 야생의 소년 역을 무리 없이 해냈다.
그는 10~2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꽃미남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인기에 안주할 만도 한데 정작 본인은 배우로서의 무게감에 목말라했다. 2010년 덜렁거리고 능글맞은 산부인과 레지던트 2년차 안경우(SBS ‘산부인과’)로 비로소 실제 나이와 비슷한 역을 맡았을 때 그는 “어려 보이는 얼굴 때문에 줄곧 학생 역만 (섭외가) 들어와 스트레스가 컸다”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소년’의 사전적 의미처럼 그는 유독 결핍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다. 2010년 출연한 KBS ‘성균관 스캔들’에서 그가 연기한 구용하는 음주가무를 즐기며 만사가 태평해 보이는 자유로운 영혼이나 동시에 상인 집안 출신 양반이란 신분의 한계에 괴로움을 느끼는 양면적 인물이었다.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착한남자’ㆍ 2012)에선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사랑하는 여자의 배신으로 자신의 인생마저 수렁으로 내던져지는 강마루로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어쩌면 30대가 돼서야 완벽한 남자의 모습으로 한 여성과의 온전한 사랑을 꿈꾸게 된 배우 송중기에 대한 응원일지도 모른다.
‘태양의 후예’로 남성성이 뒤늦게 부각되고 있으나 송중기의 ‘상남자’ 기질은 연예계에서 유명하다. 한예슬과 호흡을 맞춘 저예산영화 ‘티끌모아 로맨스’(2011) 촬영 당시 그의 사내다움은 영화계의 화제였다. 구홍실(한예슬)과 천지웅(송중기)이 술에 취해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장면을 촬영할 때 송중기의 적극적인 연기가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고운 피부 속에 감춰진 그의 또 다른 성정이 유시진 대위를 통해 발산되고 있다는 평이 따르는 이유다.
송중기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연으로 활약한 작품에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배우로 꼽힌다. ‘성균관 스캔들’은 10%대, ‘착한남자’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각각 기록했다. 영화 ‘늑대소년’ 역시 700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티켓 파워까지 보여줬다. 그는 군입대 전 유아인, 김수현과 함께 한국영화계를 이끌 젊은 배우로 꼽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KBS가 ‘태양의 후예’란 드라마를 방영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렸을 때 대중은 배우 송혜교와 김은숙 작가란 이름에 먼저 귀 기울였다. 3년의 공백이 그가 미소년의 이미지로 쌓아 올린 유명세를 지워버린 형국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된 지 한 달 여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남자로 대중 앞에 다시 우뚝 서게 됐다. 새로운 송중기의 시대가 이제 막을 올렸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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