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난 9일 제6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자인 사진가 이상엽(49)씨를 만났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보였다. “시간은 분명히 흐르고 있는데 실체가 없어요. 아니면 실은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걸 수도 있죠.”
수천년 인류 역사상 “철학ㆍ과학을 비롯해 어떤 분야에서도 정의를 내지 못했다”는 시간에 대해 논하던 그는 “그것을 ‘턱’ 썰어 사진에 담고 싶었다”는 말로 수상 기념 특별전을 소개했다. 강화도 ‘돈대’를 소재로 30일까지 열리고 있는 전시의 이름은 ‘변경의 역사(The history on Frontier)’. 주변(변경)에 위치하는 돈대, 그곳에 새겨진 역사에 주목한다는 의미다.

강화도 돈대는 숙종 5년인 1679년 축조됐다. 외세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80일만에 48개를 만들었으니 급조한 셈이다. 그 후 돈대는 200여년 방치됐다가 1866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미국,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입구로 이용됐다. “막고 봉쇄하라고 만들어진 요새가 개방의 통로로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거죠.” 돈대가 갖는 그 아이러니에 주목한 사진들이다.
이상엽은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좇거나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을 자신의 사진 미학이라고 말한다. 돈대도 있는 그대로를 ‘드라이(dry)’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돈대를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에요. 1년 정도 돈대 근처를 돌아다니며 2만 장 가까이 사진을 찍었고 그 중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적합한 것들을 추려낸 거죠.”

돈대의 시간, 다시 말해 변경의 역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뭘까. “영원한 것은 없다”는 낡은 철학적 명제다. “중심이었던 것이 주변이 되기도 하고, 주변에 있던 게 중심으로 오기도 해요.” 그리고 그는 ‘가능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소외되고 배제된 것(사람)들이 언제까지나 그 상태는 아닐 것이라는 가능성을 돈대가 보여주는 거죠. 마치 로마제국의 중심인 로마가 무너지면서 게르만족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처럼 말이에요. 역사는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이상엽에게 사진은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매체다. “사람들은‘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진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현실을 바꿔낼 수도 있는 거죠.” 그는 이를 “사진이 갖는 정치적 힘”이라며 자신 또한 “정치적 힘을 갖는 사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가을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낙타가 된 사람들’이라는 전시와 사진집 출간도 계획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많이 다뤄졌지만 그 전시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거에요.” 전시에서는 65인의 비정규직 노동자 얼굴을 정면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 그들의 구술까지 담아 책으로 낸다. 그들은 왜 비정규직이 됐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래요. 대상 선택에서부터 작가의 생각이 투영되죠.”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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