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레티시아에서 브라질 마나우스까지 3일간의 아마존 항해
아마존 강을 배로 세 번 건넜다. 한 번은 객실에서 두 번은 해먹을 이용해서. 그리고 두려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새 꼬리 깃털 끝에 달린 듯한 콜롬비아의 최전방 레티시아.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국경 마을 중 하나다. 30분 내 3개국 주파가 누워서 떡 먹기다. 레티시아에서 버스를 타면 눈 깜짝할 새 브라질 타바팅가가 나오고, 보트 타고 강을 건너면 페루 산타로사 섬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다. 그런데 국경이 없다. 아니 있지만 느낄 수 없다. 이 일대에서 출입국 스탬프는 실제 국경선에서 찍지 않는다. 브라질 타바팅가에서 마나우스행 선박에 승선하기 하루 전,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마을 깊숙이 있는 연방경찰서에서 브라질 입국 스탬프를 찍었다. 이 아마존 지대에서만 용인되는 국경의 신문화였다.
브라질 타바팅가에서 마나우스로 넘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비행기냐 화물선이냐. 저렴한 특가 항공권에 유혹당할 법도 하지만, 평생 아마존 강을 건너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보겠냐는 일념으로 선박에 몰방했다. 부르르 떨렸다. 전세계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세계 최장의 강을 건너는 영광이 드디어 우리에게 온 것이다!
진짜 고민은 선박 티켓을 끊기 바로 직전에 터졌다. 타바팅가에서 마나우스로 가는 3일간의 숙소 타입을 택해야 했다. 객실? 아니면 해먹? 편의를 따진다면 무조건 객실이지만 가격 차가 2.5배에 달했다. 탕탕은 캐빈으로, 난 해먹으로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나의 배낭엔 공책들뿐이었지만, 그의 배낭엔 도둑의 심장 박동수를 뛰게 할 사진 장비가 세트로 있었다.
의견 차이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레티시아는 콜롬비아의 최강 촌구석이지만, 달러 환율이 어느 대도시보다 후했다. 페루에서 달러 통용이 활발한 연유라 했다. 단, 구겨진 돈은 절대 사양한다. 은행에서 갓 발행한 것 같은 빳빳한 돈만 제값을 받을 수 있다. 헌 돈은 받는다 해도 몹시 부당한 환율을 적용했다. 탕탕에게 비상금을 찾아보라 했다. 그는 조커 웃음을 지으며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를 세차게 흔들었다. 고작 14달러의 환전 이득 앞에서 로또라도 당첨된 양 함께 웃음을 지었다.
“객실로 하자!”
우리가 탄 선박 이름은 voyager V. 5번째 버전에 해당하니 그만큼 업그레이드되었으리. 호의호식할 크루즈 수준은 아니라도 그 반 푼어치는 따라갈 수준일 거라 생각했다. 짐작대로 우린 완벽하게 틀렸다.
마침내 승선하는 날, 택시는 레티시아 숙소에서 타바팅가의 선착장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쏜살같이 달렸다. 선착장은 불법 원양어선에 실려가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한산했다. 긴 기다림 끝에 승선 명령이 떨어지고 배낭 검사가 진행됐다. 앞사람의 배낭이 총기를 소유한 보안 경찰에 의해 거의 난도질 되었다. ‘샅샅이’란 단어를 실행에 옮기는 멋진 청년들이었다. 다시 짐을 싸는 건 오롯이 여행자의 몫. 본능적으로 이럴 땐 웃는 게 최고란 걸 알고 있었다. 싱긋싱긋 웃음에 대충 살핀 경찰은 곧 승선을 허가했다. 반면, 탕탕의 짐은 깐깐한 여성 경찰에 의해 해부되고 있었다. 이상한 승리감에 도취된 난, 객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자, 우리의 3일 밤을 책임질 객실로 입장이요. 설마 교도소 독방 같은 이 방이? 이층 침대와 바로 붙은 붙박이 선반, 이게 전부였다. 다행히(라 생각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가) 열쇠는 있었다. 매점 점원과 우리만 사용할 화장실 키를 받는 특권은 있었다. 해먹 이용자가 머무는 3층에 오르니 객실과 그다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20명당 1명꼴의 화장실 쟁탈전이 벌어질 순 있겠지만.
매점 앞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와 문 앞에 앉았다. 아마존의 낮은 참 무덤덤했다. 그냥 하늘이요, 숲이었다. 에메랄드 빛 강물 대신 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 한 해먹 이용자가 열려있는 짐이 널브러진 우리 객실 안을 보더니 ‘쯧쯧’ 혀를 차고 지나갔다. 선박에는 트로트 같은 브라질의 대중가요가 무한 재생되고 있었다.
찐득찐득한 바람을 맞으며 성의 없이 풍경에 시선을 내어줄 때, 탕탕이 다급히 불렀다. 저녁 먹을 시간이란다. 어? 오후 4시인데? 레시티아 숙소 주인 토마스는 오전 6시, 오전 11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일정하게 식사가 제공될 거란 정보를 귀띔해 준 바 있었다. 브라질은 콜롬비아보다 1시간 느리다. 아, 병원에 입원한 꼴이로구나. 때를 놓쳐 쫄쫄 굶을 걱정도 없었다. 병원처럼 내 무릎 앞에 쟁반을 대령하진 않지만, 힘 좋은 선원이 때가 되면 언제나 객실 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1층으로 내려가니 난민촌이었다. 필시 화물칸인데 짐과 사람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곳을 통과해 뱃머리 반대편으로 가면 식당이 나왔다. 매일 3번 승객들은 미워도 싫어도 이곳에서 조우할 운명이었다.
모든 메뉴는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상호협정 음식 같았다. 삶은 팥과 밥, 파스타, 치킨 수프나 구이 등 주 메뉴는 콜롬비아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차이라면 오로지 ‘브라질너트’였다. 아마존 강 유역엔 줄기가 우산살처럼 뻗은, ‘숲의 천장’이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열매의 속을 까면 보이는 24개의 신비한 씨앗이 바로 브라질너트인데, 이를 곱게 빻은 가루가 테이블 위에 있었다. 옆 사람 따라 아무 데나 뿌려 먹어봤다. 깨처럼 특유의 맛이 있진 않았는데, 뿌려 먹지 않으면 허전한 명불허전 식재료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오니 선박은 한 작은 마을에 정박하는 중이었다. 아마존 항해가 교향곡이라면, 정박은 단연코 다양한 화음의 스타카토 연주였다. 선착장에선 보통 화물과 사람이 동시에 이동 몸살을 겪는데, 이 마을은 선착장이 순식간에 활어 공판장으로 돌변했다. 아마존 생존자들이 선박 시간에 맞춰 고깃배를 타고 삼삼오오 모여 활어 거래를 시작한 터였다. 사는 자와 파는 자, 눈치 보는 자의 비린내 나는 해학이 그곳에 있었다. 속세를 무시하듯 반대편에선 민물 돌고래가 미끈한 등을 내보이며 유랑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본 민물 돌고래였다.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시간은 아마존 강의 탁류가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순간이었다. 오후 5시경 낙조 전후에 펼쳐지는 강의 서사시랄까. 이즈음 아마존은 가히 신데렐라가 되었다. 금세 폭풍이 내려칠 듯 빨라지는 조류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다가 회색 캔버스에 그려 넣은 쌍무지개의 환희를 선보였다. 가끔은 뚝 반으로 갈라놓은 듯 하늘의 왼쪽은 회색, 오른쪽은 파란색으로 채색되었다. 열대우림을 수평선으로 하늘과 강이 데칼코마니를 그린 장면 앞에선 먹먹해졌다.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순간만큼은.
3일을 꼬박 아마존 강에서 보내고 마나우스에 닿기 직전, 선장의 객실 앞에선 마지막 밤을 축하하는 바비큐 연기가 자욱했다. 우린 선박 내에서 무한 반복되던 대중가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배를 타고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심했다. 버리는 시간이 아마존 강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주는 아마존 강을 두 번 건넌 ‘해먹 고군분투기’가 찾아갑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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