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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보존처리유물 ‘베스트 5’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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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보존처리유물 ‘베스트 5’는 무엇?

입력
2016.03.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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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유물 보존ㆍ복원을 맡은 공공조직은 1969년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소ㆍ보존과학 전문인력 76명)을 시작으로 76년 국립중앙박물관(31명), 86년 국립현대미술관(15명), 98년 국가기록원(14명), 2002년 국립민속박물관(10명)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민간 보존처리 업체도 46개(추정치)가 있긴 하지만 숭례문 현판 등 10년 이상 걸리는 중장기 대형 프로젝트는 모두 이런 공공기관이 떠맡는다.

박물관이 소장품 복원에 집중한다면 문화재연구소는 공공, 민간의 위탁을 받아 발굴현장에 투입되거나 당장 보수가 시급한 문화재를 보존, 복원해 다시 돌려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 전문가들이 국내 최고의 보존처리 유물 5개를 꼽았다.

최치원 진영

(1793년 제작ㆍ2009년 분석)

최치원 진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최치원 진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적외선 촬영 결과 문방구류와 책 뒤에 가려진 동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적외선 촬영 결과 문방구류와 책 뒤에 가려진 동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신라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을 그린 작품이다. 1793년 하동 쌍계사에서 제작된 최치원 진영 작업에는 비구인 평일(評一)과 찰호(察昊)가 참여했다. 이 그림은 경주 최씨 문중에서 부산박물관에 기탁해 보관돼 있다가 2009년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전시유물로 선정됐다. 그런데 전시에 앞서 적외선 촬영을 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X선 투과를 통해 들여다본 그림에는 왼쪽 문방구류와 오른쪽 책 아래 동자승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 동자승 흔적을 없애고 덧칠을 한 것이다. 동자승을 없앤 이유는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하다. 일단 조선 개국 초부터 지속됐던 억불숭유정책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당시 득세했던 유학자들이 신선의 모습으로 표현된 최치원의 모습을 유학자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매화 새 용무늬 연적

(19세기ㆍ1986년 보존처리ㆍ2015년 분석)

겉에서 본 매화 새 용무늬 연적의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겉에서 본 매화 새 용무늬 연적의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CT 촬영 결과 해태 모양의 내기가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CT 촬영 결과 해태 모양의 내기가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중 구조인 연적이다. 물통 역할을 하는 내기와 그것을 둘러싸는 외기로 이뤄져 있다. 매화ㆍ새ㆍ용 무늬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투각한 바깥 장식이 물을 담는 몸체를 정사각형으로 감싸고 있다. 외각의 투각된 무늬에는 청화와 철화로 채색했고 용은 백자의 본래 색상으로 남겨두고 눈만 청화로 점을 찍었다. 내기와 외기는 수도(水道)로 이어져 있어 연적을 기울이면 내기의 물이 외기의 수구로 흘러나오게 된다. 눈으로 보이지 않던 내기의 모습은 CT 촬영을 통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에는 해태 모양을 한 신수가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다. 안팎의 이음도 매우 정교한 모습이다.

봉황모양 유리병

(신라ㆍ1984년 1차 보존처리ㆍ2014년 2차 보존처리 및 분석)

봉황모양 유리병 목 부분 해체 작업 후 분리된 편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봉황모양 유리병 목 부분 해체 작업 후 분리된 편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복원된 봉황모양 유리병. 국립중앙박물관
복원된 봉황모양 유리병.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193호 봉황모양 유리병은 신라와 페르시아 간 교류를 보여주는 주요 문화재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연녹색 유리병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oe)라고 불리는 유리병과 형태가 흡사하다. 시리아 등 동부 지중해 주변에서 만들어진 유리병이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지나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손잡이에 감긴 금실은 부러진 손잡이를 수리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황모양 유리병은 1984년에 1차 보존처리, 2014년에 2차 보존처리를 했다. 1차 보존처리 당시 복원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복원에 사용된 재료가 누렇게 변색되고 접착력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2차 보존처리 결과 높이는 24.8㎝에서 25㎝로, 몸체는 10.2㎝에서 9.7㎝로, 무게는 307g에서 308.9g으로 변해 좀 더 원래 형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2차 보존처리와 함께 진행된 분석을 통해 손잡이에 감겨있던 금실이 약 22캐럿의 순도를 지닌 금제품인 것도 밝혀졌다.

이순신 난중일기

(1592~1598년 유물ㆍ2013~2014년 보존처리)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보존 처리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보존 처리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보 제76호 난중일기 처리 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보 제76호 난중일기 처리 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선조 25년부터 전사하기 전까지의 임진왜란 시기 친필로 작성한 필사본 일기로 난중일기 7책,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으로 구성됐다. 유네스코 등재 심사소위원회에서 문화재 안전 보존 조치를 권고함에 따라 현장 보존상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마모와 꺾임, 얼룩, 결실, 과거 미흡한 보존처리 흔적 등이 발견됐다. 이규식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장은 “종이를 물에 넣으면 농도차로 오염물이 빠진다. 글자는 먹으로 썼는데, 카본에 아교를 넣어 쓴거라 물에 녹지 않고 남는다”고 설명했다. 종이와 비슷한 재질과 두께의 종이로 결실 부분을 보강처리하고 소맥전분풀로 배접을 실시했다. 2013년 5월~2014년 4월 1차 계사일기, 갑오일기, 서간첩, 임진장초를, 4월~10월 2차 임진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를 보존처리 했다.

삼전도비

(1639년 유물ㆍ2007년 보존처리)

그림 9삼전도비 보존처리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림 9삼전도비 보존처리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삼전도비 처리 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삼전도비 처리 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로 불리는 이 비의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인조가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마련된 수항단(受降壇)에서 청 태종에 항복한 사실을 기록한 치욕의 증거다. 앞면에 만주문자와 몽골문자로, 뒷면에 한문으로 항복 사실을 음각했다. 2007년 2월 4~5일경 이름 모를 시민이 비석 앞뒷면에 붉은색 락카로 ‘철’‘거’ ‘병자’ ‘370’이란 글자를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조사 결과 비석 귀부 부분은 화강함 재질로 붉은색 페인트 낙서는 유기용제로 세척이 가능했지만, 비의 몸통 부분은 대리석 재질로 완전한 세척은 곤란할 것으로 판단됐다. 같은 재질의 대리석을 대상으로 ▦닦아내는 법 ▦세피올라이트 점토를 이용한 습포법 ▦레이저 세척법 등을 실험했고, 접착식 습포제를 비문에 바른 후 완전히 건조시킨 다음 제거하는 방법을 10번 반복, 손상 없이 제거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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