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영ㆍ지병근 교수와 동행르포]
“더민주, 물갈이 해도 표 얻긴 부족
국민의당, 내부 싸움으로 하락세”
“옛날엔 당 깃발 보고 밀었지만
이젠 서민 잘 살게 할 후보 지지”
시민들 인물 중심 투표 의지 보여
두 교수, 광주 지역감정 문제 놓고
“해결가능” “생존문제” 대립각도
4ㆍ13 총선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광주에서 서울의 교수와 광주 교수가 만났다. 야권의 심장인 광주 민심을 현장에서 취재하고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만난 이들은 야당의 영향력을 이미 많이 벗어난 시민들의 목소리에 적지 않게 놀랐다. “민주당 깃발을 거꾸로 꽂아도 뽑아준다”던 과거 광주 민심은 뚜렷하게 ‘인물론’ 중심으로 흐르고 있었다. 두 교수의 초행 취재에 기자도 하루 동안 함께하며 광주의 변화를 공유했다.
“우덜 같은 사람들 살리는 사람으로 결정해야제”
“더불어민주당은 당 이름 바꾸고 물갈이를 했다 해도 광주 표를 다시 가져가기엔 부족하다. 동정심이 일던 국민의당은 내부 싸움으로 처음보다 분명히 내려가는 분위기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의 기세가 매섭던 11일 오전.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날씨만큼 차가운 택시기사 정모(52)씨의 첫 대답을 듣는 것으로 첫 르포 취재에 동참했다. 김 교수는 광주 송정역에서 현지 민심의 안테나로 통하는 양동시장까지 가는 20여분 동안 정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집중했다. 정씨는 “나 같이 늙은 사람은 그래도 이래저래 좀 더 지켜보는데, 금방 월곡동(광산구 소재)에서 탄 젊은 손님은 더민주가 물갈이 잘했다고 보더라. 결국 광주시민들은 투표소 들어갈 때나 누구 찍을지 결정할 거다. 광주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양동시장에서 만나기로 한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기다리던 중 뿔난 광주 민심을 재차 확인했다. 시장 입구에서 야채를 팔던 칠순의 김모 할머니는 ‘어느 당 후보에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서울에서 온 교수 양반, 그 짝이 답을 한 번 해 보쇼, 내가 누굴 뽑아야 하는지”라고 응수하며 “어느 당을 찍어야 서민들이 잘 살겠어? 나는 기권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장사를 하던 다른 할머니도 “안철수도 나올 때보다 못하고 다른 당도 다 시끄럽고 그렇더라. 우덜 같은 사람들 살리는 사람으로 결정해야제”라고 보탰다.
지 교수를 만난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들려 유명세를 탄 양동시장 내 한 국밥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장 이곳 저곳에서 민심을 듣던 두 교수는 한 상인에게 ‘요즘 나오는 야권 통합이 중요하냐’는 좀 더 심화된 질문을 던져봤지만 돌아온 답은 유사했다. “지금은 통합이 어렵지 않겠나. 안 되면 더민주와 국민의당 둘 다 잘못하게 되는 거니 서로 양보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대화의 결론은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 장사도 잘 되고 사는 데 당을 떠나 도움 주는 사람으로 투표하겠다”로 귀결된 때문이다.
“지역주의 역이용한 정치인들에 배신감”
두 교수는 머리국밥에 가볍게 소주 한 잔을 걸치며 변한 광주 민심의 이유에 대해 각자의 분석을 내놓았다. 거듭 확인되는 정당을 배제한 투표 의지에 두 교수의 견해는 조금씩 달랐다. 지 교수는 지역주의를 역으로 이용만 했던 기성 정치인에 대한 배신감을 원인으로 지적했고, 김 교수도 비슷한 진단 아래 광주 시민의 앞선 정치의식에 방점을 찍었다.
지병근 교수
“광주 유권자들의 문제 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크고, 정치인에 대한 기대 수치도 타 지역보다 높아요. 분당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원 200만 명 중 절반이 호남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동안 국회의원들이 그걸 활용할 능력도, 노력도 없었고 결국 이런 이반 현상이 벌어진 걸로 보입니다.”
김의영 교수
“지역주의도 권력을 잡은 패권적 지역주의와 그렇지 않은 저항적 지역주의는 다릅니다. 광주는 실제로 여러 가지 차별을 받은 게 사실인데, 지역 정치세력들이 오히려 패권적 성격으로 지역주의를 정당화시키고 이용한 측면이 있어요. 오전에 택시 기사님도 그랬지만 광주시민들의 정치 의식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앞서가는 걸로 보여요. 그 동안 지역주의를 이용한 정치인들에 대해 이제 민심이 그 부분을 포착한 것 아닐까요.”
지병근 교수
“물론 지역마다 정치 엘리트와 대중 간 갈등은 존재합니다. 문제는 친노 패권주의든 호남 정치복원론이든, 이게 광주의 건강한 민주적 책임성을 없애 버린 형식으로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그 동안 광주 내부 문제가 국민의당 창당 등 야권 분열로 이번에 터진 것으로 봐야죠.”
중장년ㆍ청년, 미묘한 표심 차이
식사를 마친 두 교수는 광주시청 인근의 서구 5일장으로 향했다. 외지인 유입이 많은 서구는 제1야당만 찍던 전통적인 광주 여론이 이반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은 서구에서 “당을 떠나 투표하겠다”는 여론과 함께 세대 간 성향 차이도 포착했다. 5일장에서 생선을 파는 김모(57)씨는 ‘국민의당과 더민주 중 어디가 잘한다고 보냐’라는 교수들의 질문에 “옛날이나 당 깃발보고 밀었지 지금은 아니다”며 “아무나 나오면 국회의원 되는 건 지나간 이야기란 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일을 팔던 진모(69)씨도 ‘후보의 어떤 면을 보고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서민들을 어떻게 잘 살게 해줄지 말하는 사람을 지지하겠다”고 뚜렷하게 밝혔다.
두 교수가 서구에서 만난 청년층의 투표 성향은 결이 달랐다. 취업을 위해 광주를 떠날 가능성이 높은 20대 아르바이트생들은 “정치는 전혀 관심 없다”, “누가 잘 하는지 알 생각도 없다”는 말로 정치혐오 태도를 보였다. 반면 30대 직장인들은 “어느 당이 더 개혁적이고 중앙 정치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후보를 내놓는지 보고 결정하겠다”며 ‘힘 있는 야당’ 실현 가능성을 선택의 1순위로 두는 모습이었다.
두 계층 모두 당을 떠난 선택을 전제했지만, 중장년층은 철저히 서민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청년층은 전체 여야 정치의 틀에서 각 정당의 흐름을 참고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세대간 지지성향 차이는 진보정치 실종 때문?
두 교수는 미묘하게 갈리는 세대 간 성향 차이에 대해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지 교수는 청년층이 기성 정치인과 정서적 유대감이 낮은 것에서 원인을 찾았다. 반면 김 교수는 이념 성향에 함몰된 광주 정치의 구조적 문제에서 청년층이 배제된 것으로 파악했다.
지병근 교수
“광주 유권자들은 이중적인 욕구가 분명히 있습니다. 지역에서 경쟁적 정당 체제를 만들어 자신들을 잘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하나이고, 그 보다 우위는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 중 젊은 층에선 정권교체에 대한 욕구가 높게 나타나죠. 상대적으로 중장년층은 오래 봐 온 광주 정치인에 대한 정서적 동질감이 크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것 없이 힘을 가진 야당을 원하게 된 것입니다.”
김의영 교수
“광주에선 현재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누가 좌클릭이냐 우클릭이냐가 전체 선거 논쟁의 핵심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논의는 세대와 소득 층위를 기준으로 밑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두 당이 이념을 떠나 아래로 내려가며 표심 확보를 위한 경쟁을 해 젊은 층에도 새로움을 보여줬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결국 청년과 중장년의 정치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지병근 교수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이번 광주 총선이 과거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젊은층 지지가 많은 진보 정치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이 선택의 여지에서 사라지면서 국민의당과 더민주가 과감히 오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진보 쪽 경쟁자가 없으니까요. 결국 젊고 진보적인 유권자의 선택 측면에선 폭이 좁아진 셈이죠. 그들로선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찍는 부정적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서울 교수는 “지역감정 해결 가능”, 광주 교수는 “지역에선 생존 문제”
큰 틀에서 광주의 변화에 공감하던 두 교수는 지역감정의 유무와 의미를 평가하는 부분에선 대립각을 세웠다. 김 교수는 해외 사례들 들며 호남의 지역감정을 해결 가능한 문제로 파악했지만, 지 교수는 서울에서 보는 것처럼 이념 문제가 아닌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김의영 교수
“호남이 가지는 지역간 갈등 및 감정 문제는 좀 과장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벨기에 경우 종족과 종교, 언어가 달라도 와플처럼 붙어서 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왜 못할까요? 결국은 정치인들이 제도를 못 고치고 시민사회에서도 서로 간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으로 차별이 억울한 것도 있지만, 잘하고 복원되면 한을 풀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지병근 교수
“이건 꼭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수도권은 느낄 수 없는, 지역의 소외 의식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광주에는 일자리가 없어요. 삼성이 공장을 뺐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자리가 다 서울에 있다 보니, 서울 사람들은 ‘너희가 살기 어려우니까 그런거지, 뭐 문제가 돼?’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광주 입장에선 지역감정은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다른 이슈보다 우선 순위에서 밀려야 하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두 교수는 취재를 마치면서 인물론으로 향하는 광주 민심의 변화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데는 동의를 표했다.
김의영 교수
“앞서 기권한다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건 아닙니다. 말로만 민감해 하고 투표장을 안 가면 광주 정치가 변할 수 없고 한국의 지역주의도 깨지지 않아요.”
지병근 교수
“광주가 호남이니까 당연히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광주도 정당한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현재 민심 변화는 중요합니다. 몰표를 줘왔던, 극단의 선택으로 몰렸던 광주의 선택이 해결되는 것이 한국 정치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점은 분명합니다.”
광주=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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