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정하게 대국을 이끌어 온 알파고는 13일 벌어진 이세돌 9단과의 4국에선 실수를 연발했다. 전혀 알파고 답지 않은 모습으로 자멸했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이를 두고 이 9단의 승부수에 알파고가 당황한 나머지 실수를 한 것이란 주장과 알파고가 생각했던 것보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란 분석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날 승부는 접전을 거듭하던 경기 중반 이 9단의 묘수인 78수로 났다. 이 9단은 알파고의 진영인 중앙 흑 돌 사이에 흰 돌을 놓아 알파고를 혼란에 빠뜨렸다. 알파고는 79수를 아래로 늘어놓으며 이 9단의 수를 받았으나 이는 실수였고 이후 납득할 수 없는 수가 계속 이어졌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도 자신의 트위터에 “79수는 실수였는데 알파고가 87수가 돼서야 깨달았다”며“79수 때 승률이 70%였지만 87수 때는 급격히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 9단의 묘수와 여러 복잡한 형세에 기인해 알파고의 실수가 나왔다”고 진단했다. 해설을 맡은 송태곤 9단은 “이 9단이 헷갈리게 수순을 비틀면서 알파고가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둬 이 9단에게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주변이 어수선한 상태에서 이 9단의 78수로 알파고가 살펴봐야 할 경우의 수가 확 늘면서 79수에 실수를 저질렀다”며 “한번 실수를 하게 되자 그 뒤까지 영향이 이어지며 끝내기에서는 오히려 아마추어 같은 바둑을 뒀다”고 설명했다.
알파고가 이전 대국과 달리 실수를 연발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수들은 인간 전문가들이 보기에 직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 수가 실수였는지 묘수였는지는 경기가 끝나봐야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경기는 알파고가 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수였다”고 덧붙였다. 하사비스는 “알파고는 아직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개발 단계인 만큼 어떤 단점과 한계가 있는지는 우리도 경기를 계속해야만 알 수 있다”며 “그래서 이 9단 같은 훌륭한 기량을 가진 기사와 대국을 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9단은 “78수는 아무리 다른 수를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아 둔 수인데 칭찬을 받아 어리둥절하다”며 “(대국을 세 차례 해 보니) 알파고가 기본적으로 백보다는 흑을 잡았을 때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알파고가 백기를 드는 순간 현장을 찾은 취재기자들과 해설진, 구글 관계자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바둑계는 이 9단이 마지막 대국에서도 알파고를 혼란에 빠뜨리면 승산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날 대국 현장에서 만난 한 정보기술(IT)전문가도 “이 9단이 알파고에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며 “알파고의 약점을 파악한 데다가 자신감까지 회복한 만큼 마지막 대국의 승률은 50대50 정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 9단이 1승을 거두긴 했지만 알파고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철옹성을 다시 뚫긴 힘들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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