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누리당 여기저기선 ‘이런 공천이 있었나’ 하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상향식 공천 룰이란 원칙은 온데간데없고, 잇단 권력 핵심부 개입 의혹으로 공천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개혁 공천이란 수식어는 갖다 붙이기조차 민망하다는 것이다. 원칙도, 신뢰도, 개혁도 없는 ‘3무(無) 공천’이란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지난달 27일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로부터 ‘공천 살생부’를 건네 받았다는 의혹이 터졌을 때 새누리당 의원들은 “초유의 사태”라고 입을 모았다. “공천 때마다 압력설이 나돌긴 하지만, 당 대표가 이를 밝혔다는 폭로가 나온 건 급이 다르다”(한 중진 의원)는 것이다. 뒤이어 터진 사전 여론조사 유출 파문 때는 당직자들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본 한 당직자는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공천 관련 사전 여론조사는 밀봉해 보고하는 게 관례라 중간에 유출되는 배달사고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정 계파의 작전이라는 음모설도 제기됐다.
화룡점정은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의 ‘막말 녹취록 파문’이다. 윤 의원이 청와대 살생부 의혹이 터진 날, 또 다른 친박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 대표를 거론하며 “그런 XX부터 공천에서 솎아내라”고 한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이다. 여권에서는 “당 대표가 묵사발이 됐다”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대다수 의원들은 “이게 공당의 공천이냐”며 “뭐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언급을 피했다.
공천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되레 이 같은 파문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위원장은 급기야 공관위가 전체회의에서 결정한 김 대표의 공천 확정을 독단적으로 보류하고 발표했다가 공관위를 해체 직전의 위기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회동 의혹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명 없이 넘어갔다.
13일에는 대구의 친박계 조원진 의원이 공관위가 발표도 하기 전인 12일 “16, 17일로 경선이 결정됐다”는 문자를 돌린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조 의원은 “경선 가능 일을 예측해 보낸 것으로 ‘결정’이란 표현은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비박계에선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추락하는 건 공관위의 신뢰도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의혹이 의혹으로 덮인 채 급속히 총선 국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원칙도 개혁도 없는 공천이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18대와 19대 총선 공천에서도 계파 공천 갈등을 겪었으나 이번 공천이 가장 극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각 대선 이듬해와 대선 직전 치러져 권력의 구심이 명확했던 때라 지금보다는 내홍이 덜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올해는 공천전쟁에서 친박계와 비박계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살아남느냐에 미래권력 구도가 정해지기 때문에 양쪽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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