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0주년을 맞은 BMW를 위해 메르세데스-벤츠가 축하광고를 했다고 한다. 광고에는 “100년 동안의 경쟁에 감사한다”는 내용과 함께 “그 전 30년은 조금 지루했다”는 위트 있는 표현도 담았다. 벤츠의 역사가 더 길다는 자랑으로도 읽히지만 어쨌든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을 존중하고 축하해주는 모습은 훈훈하다.
우리 자동차 업계에도 이런 따뜻한 장면이 있었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94년 2월 18일 대우자동차가 서울 남산의 힐튼 호텔에서 대형 세단 ‘아카디아’를 발표한 날이다. 김우중 대우자동차 회장과 김선홍 기아자동차 회장이 나란히 신차 출시를 지켜보고 있다. 기아차 ‘포텐샤’ 판매에 악영향을 줄지 모를 최고급 차종이었지만 김선홍 회장은 기꺼이 라이벌의 잔치에 참석, 덕담을 건넸다.
사진 속 회장들은 모두 일어서서 신차 발표회의 다른 참석자들과 어울리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도 있었지만 역시 선채로 행사장을 지켰다.
당시 아카디아는 일본 혼다의 ‘레전드’를 부품 상태로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 부품 국산화율 60%를 맞췄느냐가 논란이 되던 상황. 양사 실무진에서는 이를 두고 공방이 치열했지만 최고경영자들은 연연하지 않고 이처럼 통 큰 행보를 보였다. 요즘에는 좀체 보기 힘든 모습이다.
신차 발표회에 경쟁사 대표를 초청하고 또 흔쾌히 그런 자리에 참석하는 낭만이 있었기 때문일까. 김우중 회장과 김선홍 회장은 시장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서로를 멀리하지는 않았다.
기아차의 몰락을 부른 일명 기아차 사태가 터진 직후인 1997년 9월 두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 현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김우중 회장이 기아차 전시장을 찾아갔다. 김우중 회장은 “기아차가 삼성으로 넘어가면 대우차가 위험할 수 있다, 기아차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아차는 결국 현대차로 넘어갔고, 대우그룹도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5년에는 김선홍 회장이 김우중 회장을 찾아갔다. 병문안이었다. 검찰 조사를 받던 김우중 회장은 심장혈관 수술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김선홍 회장은 쾌유를 비는 덕담과 자동차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을 회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둘 사이에는 동병상련의 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기아차 사태 이후 칩거에 들어간 김선홍 회장은 2004년을 전후해 평화자동차 고문으로 주 2, 3회 사무실에 나왔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김선홍 회장의 칩거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우중 회장은 2014년 비망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출간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지금은 김우중 사관학교로 불리는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을 통해 해외에서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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