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패 당하고도 의연하게 기자회견 임해
구차한 변명 없이 “나의 완패” 인정
후배들과 밤샘 토론 등 대국마다 최선
지난 12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기자회견장. 이날 기자들은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이 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3연패를 당한 이 9단이 받았을 심리적 충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기자회견장에 반드시 나와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그는 1국, 2국에 이어 이날도 기자회견장에 나와, 기자들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묵묵히 기자회견을 끝내고 퇴장하는 이 9단을 향해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승패를 떠나 바둑의 낭만을 보여준 한 인간의 품격에 대한 찬사였다.
3대1. 알파고의 실력은 예상보다 강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의 투혼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전 세계를 경악시키지만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매번 대국마다 최선을 다하는 이 9단의 모습도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첫 대국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바둑의 낭만을 지킬 수 있는 대국을 펼치겠다”고 한 약속을 그는 실천하고 있다.
이 9단은 졌을 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얼굴 표정을 읽을 수도 없는 알파고는 1초당 10만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구글 서버 1,000여대 등 수 백 명의 훈수꾼을 등에 업은 맹수 앞에 선 고독한 검투사였지만 그는 그저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나의 완패였다”며 담담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패인으로 시인했다.
그는 충격 속에서도 항상 복기를 한 뒤 다음 대국을 준비했다. 2연패를 당한 뒤엔 후배 기사들과 함께 알파고를 무너뜨릴 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밤샘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3국 패배 이후에도 “승패는 갈렸지만 능력을 평가할 때는 1∼3국보다 4, 5국이 더 정확할 수 있으니 많이 지켜봐 달라”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집념은 결국 13일 첫 승리의 감격으로 이어졌다.
이현욱 8단은 “내가 아는 이 9단은 인간 중 가장 심장이 강한 사람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결하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불꽃 투혼을 보여주는 이 9단의 모습에 감사하고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호정 4단은 “생중계로 이 9단이 알파고의 수에 홀로 어깨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볼 땐 마음이 아파 울었다”며 “그러나 3연패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값진 첫 승으로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준 이 9단의 투혼에 깨달은 게 많다”고 전했다.
심장이 없는 기계 앞에 인간의 가슴을 보여주고 있는 이 9단의 바둑은 결국 첫 승으로 보상을 받았다. 15일 오후 1시에 열리는 마지막 대국에서도 그는 바둑의 낭만과 인간의 품위를 끝까지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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