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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보여준 건 승패 아닌 '바둑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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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보여준 건 승패 아닌 '바둑의 낭만'

입력
2016.03.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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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패 당하고도 의연하게 기자회견 임해

구차한 변명 없이 “나의 완패” 인정

후배들과 밤샘 토론 등 대국마다 최선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왼쪽)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제4국에서 이세돌 9단이 돌을 내려놓고 있다. 구글코리아 제공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왼쪽)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제4국에서 이세돌 9단이 돌을 내려놓고 있다. 구글코리아 제공

지난 12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기자회견장. 이날 기자들은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이 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3연패를 당한 이 9단이 받았을 심리적 충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기자회견장에 반드시 나와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그는 1국, 2국에 이어 이날도 기자회견장에 나와, 기자들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묵묵히 기자회견을 끝내고 퇴장하는 이 9단을 향해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승패를 떠나 바둑의 낭만을 보여준 한 인간의 품격에 대한 찬사였다.

3대1. 알파고의 실력은 예상보다 강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의 투혼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전 세계를 경악시키지만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매번 대국마다 최선을 다하는 이 9단의 모습도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첫 대국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바둑의 낭만을 지킬 수 있는 대국을 펼치겠다”고 한 약속을 그는 실천하고 있다.

이 9단은 졌을 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얼굴 표정을 읽을 수도 없는 알파고는 1초당 10만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구글 서버 1,000여대 등 수 백 명의 훈수꾼을 등에 업은 맹수 앞에 선 고독한 검투사였지만 그는 그저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나의 완패였다”며 담담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패인으로 시인했다.

그는 충격 속에서도 항상 복기를 한 뒤 다음 대국을 준비했다. 2연패를 당한 뒤엔 후배 기사들과 함께 알파고를 무너뜨릴 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밤샘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3국 패배 이후에도 “승패는 갈렸지만 능력을 평가할 때는 1∼3국보다 4, 5국이 더 정확할 수 있으니 많이 지켜봐 달라”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집념은 결국 13일 첫 승리의 감격으로 이어졌다.

이현욱 8단은 “내가 아는 이 9단은 인간 중 가장 심장이 강한 사람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결하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불꽃 투혼을 보여주는 이 9단의 모습에 감사하고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호정 4단은 “생중계로 이 9단이 알파고의 수에 홀로 어깨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볼 땐 마음이 아파 울었다”며 “그러나 3연패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값진 첫 승으로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준 이 9단의 투혼에 깨달은 게 많다”고 전했다.

심장이 없는 기계 앞에 인간의 가슴을 보여주고 있는 이 9단의 바둑은 결국 첫 승으로 보상을 받았다. 15일 오후 1시에 열리는 마지막 대국에서도 그는 바둑의 낭만과 인간의 품위를 끝까지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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