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미만(100m), 20초 미만(200m), 44초 미만(400m) 기록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That's crazy)’
1990년대 200m와 400m 최강자였던 육상의 전설 마이클 존슨(49ㆍ미국)이 13일(한국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스프린터들에게 100m 10초 미만, 200m 20초 미만, 400m 44초 미만은 ‘꿈의 기록’으로 통한다. 100m와 200m, 200m와 400m를 함께 뛰는 선수는 많지만 400m 주력 선수는 100m가 약하고 100m 주력 선수는 400m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 힘들다는 게 육상계의 정설이다.
마이클 존슨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200m와 400m 2관왕,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400m 우승 등 올림픽에서만 총 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세운 43초18의 400m 세계 신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지만 그의 현역시절 100m 최고 기록은 10초09에 불과했다. 반대로 현재 최고의 육상 스타인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30ㆍ자메이카)는 100m(9초58)와 200m(19초19) 세계 기록 보유자지만 400m 개인 최고 기록은 45초28로 한참 처진다.
정복하기 힘들다고 여겨졌던 꿈의 기록이 드디어 탄생했다.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웨이드 판 니케르크(24)다.
그는 13일 남아공 블룸폰테인에서 열린 자유연방 챔피언십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98로 우승했다.
니케르크는 원래 400m가 주 종목이다. 지난해 8월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43초48로 1위를 차지했다. 그의 400m 기록은 마이클 존슨과 버치 레이놀즈(52ㆍ미국ㆍ43초29), 제레미 워리너(32ㆍ미국ㆍ43초 45)에 이은 역대 4위다. 니케르크의 200m 최고 기록은 작년 7월 세운 19초94다.
장재근 화성시청 감독은 “100m 선수는 순간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는 파워 근육이 근지구력의 두 배 정도 있어야 한다. 니케르크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몸 속에 파워 근육이 잠재돼 있었을 것이다”며 “그렇다고 해도 100m 선수만 구사할 수 있는 스타트 같은 고급 기술도 제대로 안 배운 400m 선수가 100m에서 9초대에 진입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고 평가했다.
하늘도 니케르크의 편이었다.
경기가 열린 블룸폰테인은 해발 1,300m의 고지대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단거리는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 기록 단축에 유리하다. 고지대에선 상대적으로 기압이 낮아 공기저항이 적기 때문이다. 해발 2,240m에서 열린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육상 남자 100m에서는 짐 하인스(70ㆍ미국)가 9초95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당시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10초 벽을 처음 허물었다.
여기에 이날은 초속 1.5m의 뒷바람까지 불어 니케르크를 도왔다. 뒷바람이 초속 2.0m 이하면 공식 기록으로 인정한다. 니케르크는 “나도 정말 놀랐다. 이 순간을 위해 내게 큰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대기록 작성의 기쁨을 접고 리우 올림픽 400m 금메달에만 온 힘을 쏟을 계획이다. 리우에서는 400m만 출전한다. 니케르크는 “작년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 400m에 집중해 정상에 오른 것처럼 리우에서도 400m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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