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친구의 술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많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바엔 안면이 있는 뮤지션과 낯은 익으나 어디서 만난 누구인지 기억 안 나는 중년 남자가 잔뜩 취해 있었다. 뮤지션이 내게 아는 척을 하자 중년 남자가 벌떡 다가왔다. 워낙 험한 인상인데다가 술까지 취해 험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세가 심상찮아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가 내 얼굴을 똑바로 칩떠보더니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날리는 게 아니라 악수를 청하는 거였다. 얼결에 손을 맞잡았다.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주로 조폭 영화에서 많이 본, 나름 잘 나가는 영화배우였다. 연기가 맛깔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손을 놓자마자 그는 통성명도 없이 바에 고개를 박곤 잠이 들었다. 뭔가 굉장히 부조리한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아 잠깐 어리둥절했다. 반대편에선 젊은 여성들이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상한 영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봤으나 카메라는 물론 없었다. 우습기도, 뜨악하기도 한 상황. 괜한 공소감이 느껴져 술잔을 내려놓고 귀가했다. 며칠 후 TV에서 그가 나온 영화를 우연히 봤다. 사는 게 문득 누군가 틀을 짜놓은 영화 세트장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마저 누가 조장해놓은 모조물 같아 짐짓 마음이 공허해졌다. 화면 속의 배우를 향해 그저 웃어주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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