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최초로 인간 최강자를 넘어섰다. 인간계 바둑 최강 이세돌(33)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겨룬 ‘세기의 대국’은 결국 알파고의 3연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이세돌 9단은 1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3국에서 알파고에 176수 만에 불계패를 당했다. 이로써 이세돌 9단은 5전3선승제 대국에서 세 판을 연속 패배해 우승 상금 100만 달러를 알파고에게 내 줬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는 상금을 유니세프와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말 그대로 불가항력(不可抗力)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도전자의 자세로 임한 이세돌 9단은 3국에선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서 난타전을 벌였지만 알파고의 ‘기상천외한 수’ 앞에 허사였다. 이세돌도 이날은 특별한 자신만의 스타일 없이 2국에서 프로기사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수”라고 평가한 ‘알파고급’ 수로 맞서 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김영삼 9단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알파고가 너무 완벽하다”면서 “우리가 볼 때 이상하지만 골인 지점을 찾아간다. 그게 알파고의 알고리즘”이라고 밝혔다. 4국 심판을 맡은 서건우 6단은 “초반에는 굉장히 정석대로 두다 좌반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수를 쓰며 침입했다”면서 “알파고는 자신이 유리하다 싶으면 확실히 지키는 바둑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바둑고수들도 경악했다. 국제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을 갖고 있는 구리(古力) 9단은 이날 “아마도 오직 다섯 명의 9단이 있어야 (알파고와) 일전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구리 9단은 대국 초반 이세돌 9단의 포석이 분산되면서 실패한 반면, 알파고의 전체 포석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알파고의 33번째 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수였다며, 이 수가 전체 대국에서 성공적인 것이라면 프로기사들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인간 바둑’을 가지고 노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한 누리꾼은 “이세돌이 0대 5로 지는 건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알파고가 마지막 대국에서 일부러 져서 인류에게 일말의 자존심을 남겨주는 것”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대국이 과연 공평한 조건에서 이뤄졌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인공지능 전문가 옌수이청(顔水成)은 “이런 경기는 사실 일정 부분 불공평한 것”이라며 이는 알파고가 한 기업이 보유한 전체 컴퓨터로부터 계산능력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중국언론들은 설령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에게 완패한다 해도 중국 랭킹1위 커제(柯潔ㆍ18)와 같은 다른 강적에게 진 것과 같은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비록 우승 자리는 내줬지만, 이세돌 9단은 오는 13일과 15일 알파고와 제4ㆍ5국을 마저 치른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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