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날림ㆍ청부입법 양산
법안 완성도 높일 시스템 갖춰야
의원 다양성 확보가 근본 해결책
# 3개월 전 국회의원 10명이 고등교육법 및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립대학 기부금과 적립금 출자금 등을 재원으로 ‘교육신탁기금’을 조성하는 법안이었다. 사립대학 적립금은 2014년 기준 8조2,000억원에 달한다. 적립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손실을 본 사례가 많고 기부금도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면서 교육부장관을 기금 관리 및 운용 주체로 규정했다. 교육부장관이 관리하는 수천억~수조원 규모의 기금이 설치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막대한 기금을 관리ㆍ운용할 조직이 필요하고, 당연히 교육부 출신이 중추를 이루게 된다. 교육 공무원들의 노후 안전판이 또 마련되는 셈이다. 물론 기금을 다루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도 상당할 것이다. 국회 관계자들이 이 개정안을 교육부의 우회입법으로 확신하는 이유다.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기금 신설에 반대한 기획재정부의 협조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의원들을 회유해 발의했다는 것이다.
# 6년 전 부동산 개발업체가 경남 남해에서 골프장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주민들 토지를 사들여 고급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반대하는 주민이 있었다. 으르고 얼러도 안 통하자 모든 국민이 그 앞에 평등하다는 법에 호소해 토지를 강제수용했다. 해당 주민은 근거가 된 지역균형개발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지역개발 시행자로 지정되면 골프장을 짓는 민간업자라도 지역주민의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이 법에 대해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민간업자의 개발사업을 위해서까지 공용수용(강제수용)이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공목적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공용수용을 허용한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시골에 고급 골프장을 짓는 게 공공목적에 해당되지 않으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엄연히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법이다. 이 법만 예외적으로 이상한 게 아니다.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민간사업자에게 개인 재산권을 강제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 47개나 된다.
어떻게 청부입법 냄새가 물씬한 이런 법들이 만들어진 걸까. 의원입법의 허술함 때문이다. 정부입법은 법안 발의 전 관계부처 협의, 규제심사, 법제처심사 등 통상 4~6개월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만, 의원입법은 의원들 입맛대로 만들어 제출하면 그만이다. 발의 후 심사 과정도 졸속이어서 19대 국회 의원발의 법안 1만7,000여건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 15%에 불과하다. 의원입법도 전문가의견 수렴과 국회법제실 심사, 전문위원 심층검토 등의 절차를 의무화하면 좀 더 완성도 높은 법안이 나오겠지만, 국회의원들은 ‘입법권 제약’이라며 개선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20대 총선을 한 달 남겨놓고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솔직히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공천권을 장악한 중앙당이 내놓은 인물은 하나같이 고학력의 성공한 인사들이다. 국민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다. 역대 국회의원 10명 중 6명은 이른바 SKY 출신이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여성 국회의원은 2%에 불과하다. 그 수가 2만여 명 남짓인 법조인은 19대 초선 국회의원의 16%를 점한다. 나머지도 고위관료, 교수, 금융사ㆍ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군 장성 출신 등 엘리트 일색이다. 국민 전체가 아닌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을 통해 법에 의한 지배를 실현한다. 해서 법의 주인은 국민이어야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지만 국민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통치 객체로 전락한다. 회사원 주부 농민 등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다양한 인물이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끼리 나눠먹는 지금의 공천제도로는 결단코 국민을 위한 법이 나올 수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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