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국민을 위한 법은 없다

입력
2016.03.11 20:00
0 0

19대 국회 날림ㆍ청부입법 양산

법안 완성도 높일 시스템 갖춰야

의원 다양성 확보가 근본 해결책

국회의원들은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있는가. 사진은 지난 겨울 추위에 잠긴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의원들은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있는가. 사진은 지난 겨울 추위에 잠긴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 3개월 전 국회의원 10명이 고등교육법 및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립대학 기부금과 적립금 출자금 등을 재원으로 ‘교육신탁기금’을 조성하는 법안이었다. 사립대학 적립금은 2014년 기준 8조2,000억원에 달한다. 적립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손실을 본 사례가 많고 기부금도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면서 교육부장관을 기금 관리 및 운용 주체로 규정했다. 교육부장관이 관리하는 수천억~수조원 규모의 기금이 설치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막대한 기금을 관리ㆍ운용할 조직이 필요하고, 당연히 교육부 출신이 중추를 이루게 된다. 교육 공무원들의 노후 안전판이 또 마련되는 셈이다. 물론 기금을 다루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도 상당할 것이다. 국회 관계자들이 이 개정안을 교육부의 우회입법으로 확신하는 이유다.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기금 신설에 반대한 기획재정부의 협조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의원들을 회유해 발의했다는 것이다.

# 6년 전 부동산 개발업체가 경남 남해에서 골프장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주민들 토지를 사들여 고급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반대하는 주민이 있었다. 으르고 얼러도 안 통하자 모든 국민이 그 앞에 평등하다는 법에 호소해 토지를 강제수용했다. 해당 주민은 근거가 된 지역균형개발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지역개발 시행자로 지정되면 골프장을 짓는 민간업자라도 지역주민의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이 법에 대해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민간업자의 개발사업을 위해서까지 공용수용(강제수용)이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공목적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공용수용을 허용한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시골에 고급 골프장을 짓는 게 공공목적에 해당되지 않으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엄연히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법이다. 이 법만 예외적으로 이상한 게 아니다.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민간사업자에게 개인 재산권을 강제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 47개나 된다.

어떻게 청부입법 냄새가 물씬한 이런 법들이 만들어진 걸까. 의원입법의 허술함 때문이다. 정부입법은 법안 발의 전 관계부처 협의, 규제심사, 법제처심사 등 통상 4~6개월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만, 의원입법은 의원들 입맛대로 만들어 제출하면 그만이다. 발의 후 심사 과정도 졸속이어서 19대 국회 의원발의 법안 1만7,000여건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 15%에 불과하다. 의원입법도 전문가의견 수렴과 국회법제실 심사, 전문위원 심층검토 등의 절차를 의무화하면 좀 더 완성도 높은 법안이 나오겠지만, 국회의원들은 ‘입법권 제약’이라며 개선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20대 총선을 한 달 남겨놓고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솔직히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공천권을 장악한 중앙당이 내놓은 인물은 하나같이 고학력의 성공한 인사들이다. 국민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다. 역대 국회의원 10명 중 6명은 이른바 SKY 출신이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여성 국회의원은 2%에 불과하다. 그 수가 2만여 명 남짓인 법조인은 19대 초선 국회의원의 16%를 점한다. 나머지도 고위관료, 교수, 금융사ㆍ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군 장성 출신 등 엘리트 일색이다. 국민 전체가 아닌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을 통해 법에 의한 지배를 실현한다. 해서 법의 주인은 국민이어야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지만 국민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통치 객체로 전락한다. 회사원 주부 농민 등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다양한 인물이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끼리 나눠먹는 지금의 공천제도로는 결단코 국민을 위한 법이 나올 수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