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추가 금리인하 어렵다” 발언 탓
투자심리 급속히 냉각 글로벌 시장 위축
“통화완화 정책 약발 다했나” 우려도

유럽중앙은행(ECB)이 10일 시장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기부양 종합세트를 발표했음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무덤덤하거나 오히려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간 오매불망 중앙은행의 돈 풀기 지원사격을 바랐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장기간 지속돼 온 통화완화정책의 약발이 다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0일과 11일 주요국 주식시장은 ECB의 강력한 부양조치 발표에도 불구하고 하락 또는 보합세를 보이는 데 그쳤다. 영국(-1.78%), 독일(-2.31%), 프랑스(-1.70%) 등 유럽 주요국은 물론, 미국 뉴욕의 다우지수(-0.03%)도 부양책의 약발을 받지 못했다. 11일 아시아 증시에서도 국내 코스피지수가 0.11%, 일본 닛케이지수가 0.51% ‘찔끔’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 같은 냉랭한 반응은 무엇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추가 금리인하는 어렵다”는 발언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전날 ECB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연 0.05→0%), 예치금리(-0.3→-0.4%), 한계대출금리(0.3→0.25%) 등 3가지 정책금리를 모두 낮추고 ▦회사채까지 새로 포함한 시중 채권 매입규모를 월 600억유로에서 800억 유로로 늘리는 한편 ▦4년짜리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올 6월부터 2차로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ECB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평가에, 발표 직후 유럽 증시는 일제히 3%대까지 급상승했다. 하지만 받아 든 선물 효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드라기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금리는 상당기간 낮게 유지하겠지만 더 인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밝히자 ‘더 이상의 추가부양은 없을 것’이란 실망감에 투자심리는 오히려 더 빠르게 식고 말았다.
드라기 총재 발언을 전후해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0.16% 하락했다 0.31%까지 상승하고, 1.66% 급락했던 유로화 가치가 다시 1.94% 급반등(유로당 1.1217달러)하는 등 증시는 물론, 모든 금융 지표가 들썩일 만큼 시장은 ECB의 부양책보다 향후 전망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는 등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ECB 역시 같은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는 모습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미 수년간 반복돼 온 돈 풀기 식 통화완화정책에 시장이 갈수록 내성을 쌓아가고 있다”며 “경기가 근본적으로 살아나지 않는 한 인위적인 부양 정책의 효과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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