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공상에 그쳤던 인공지능(AI)이 현실이 됐다. 수동적으로만 여겨지던 기계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은 경이롭고도 두렵다. 지난 9일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패배는 인공지능 개발 역사의 변곡점이 될 만하다. 이 9단을 꺾은 알파고처럼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에 대한 영화 속 묘사는 허다하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고, 능력은 월등한 영화 속 인공지능이 각기 어떤 모습으로 그렸는지 돌아봤다.
인공지능 영화의 기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공상과학(SF) 영화의 고전으로 인공지능이 이야기 중심에 선다. 영화 제작 당시에는 먼 미래인 2001년을 배경으로 했다. 인류의 지적 연원을 찾기 위해 목성 탐사에 나선 우주선이 이야기의 주요 공간이다. 우주선을 자율운행하고 시스템을 통제하는 인공지능 할9000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이야기는 본궤도에 오른다. 할9000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주인을 우주 밖으로 내보내거나, 선실에 가두는 과정이 그려진다. 할9000은 인간의 감정을 탐지하고,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면서 인류를 지배할 계획까지 세운다. 할9000의 반란은 실패하지만 할9000이란 존재는 인공지능에 대한 경각심을 인류에게 전했고, 이후 인류를 정복하는 기계의 상징이 됐다. 미국과 옛 소련이 체제 경쟁의 일환으로 앞다퉈 우주 개발에 나서고,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이 여전히 지배적이던 시절 묵시론적인 관점에서의 인공지능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알파고의 승리로 더욱 현실적 존재가 된 인공지능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을 거론할 때 곧잘 언급될 영화다.
인류를 도우면서 위협하는 존재: ‘에일리언’(1979)
미래 우주 식민지 개척에 나선 인류가 빼어난 지능을 지닌 포악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시기를 상상력으로 묘사한 영화이니 사람과 구분이 안 가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인간과 함께 파견된 인공지능 로봇 애쉬(이안 홈)는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회사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계생물체를 지구로 옮기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을 감시하고, 인간들을 궁지로 몬다. 동료 인간들은 그가 로봇인 줄도, 회사가 어떤 음모를 꾸미는 줄도 모르고 위기에 빠진다. 인간을 위태롭게 하는 비인간적 존재로서의 인공지능 로봇의 면모를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를 종종 따진다. 그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이라 할 ‘프로메테우스’(2013)에서도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을 등장시킨다. ‘에일리언’의 애쉬에 해당하는 역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기원을 찾아 우주여행에 나선 탐사대를 스크린 중심에 놓는다. 우주인이 인류의 창조자이고, 우주인 누군가가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 에일리언을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인류를 창조한 이는 누구이고, 왜 인류를 끝장내려고 했는가라는 물음은 인공지능에게도 해당하는 질문이다. 우리 인공지능을 창조한 존재는 무엇이며, 왜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하는가.
세상을 지배하려는 인공지능: ‘터미네이터’(1984)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재앙을 다룬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다. 미국이 국가 방호를 위해 만들어낸 컴퓨터 시스템 스카이넷이 인간의 의사에 반해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궁지에 몬 뒤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인간의 형상을 한 미래의 전투 로봇이 인간 반란군 지도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과거로 파견된다는 발단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류가 자신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교활한 방법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려 한다는 설정이 기계에 대한 전형적인 묵시론에 닿아있다. 이야기의 출발은 암울하나 속편에서는 인간미 넘치는 터미네이터가 등장해 인간을 돕는다. 기계에 대한 낙관과 비관을 뒤섞여 있다.
간절한 눈빛의 인공지능이라니: ‘에이 아이’(2001)
인공지능은 그저 무정한 로봇에 불과한 것일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에이 아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을 그려낸다.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은 어느 날 불치병 아들을 냉동시킨 한 부부에게 입양된다. 인간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 데이빗은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하고, 인간 부모를 진정한 양친으로 여긴다. 자신이 인간임을 입증하기 위해 음식을 무리해서 먹다가 고장이 나기도 한다. 인간 부모의 아들이 불치병을 이겨낸 뒤 돌아오자 데이빗은 버려진다. 데이빗은 부모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줄 ‘창조자’를 찾아 기나긴 모험을 떠나면서 서사는 절정을 향한다.
인간의 감성까지 갖춘 데이빗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자신을 내친 어머니를 향해 식지 않은 사랑을 보이는데 첨단 문명 속에서 인정을 잃은 인간들과 대조된다(인간들이 떠돌이 로봇들을 붙잡아 파괴하는 잔혹한 행위를 하나의 오락으로 즐기는 장면이 데이빗의 순수한 ‘인성’과 병치된다). 데이빗은 인공지능이 인류에 드리울 그늘보다 인공지능이 전하게 될 교훈에 방점을 찍는다.
인류 절멸에 나선 인공지능: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인공지능의 어두운 면모를 부각시킨 영화로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다.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충실한 비서 역할을 하던 인공지능 자비스가 진화하면서 가공할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 울트론이 탄생한다. 외계생물체의 침입으로부터 지구를 완벽하게 방어하겠다는 생각에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와 브루스 배너(헐크ㆍ마크 러팔로)가 합작해낸 존재이나 되레 인류를 공격하게 된다. 인류가 쌓은 모든 지적 정보를 순식간에 습득한 울트론이 지구를 위해 내린 결론은 스타크와 배너의 기대를 저버린다. 지구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는 인류이기에 인류의 절멸이 필요하다는 것. 인류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이 결국 인류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이야기 전개는 지금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인류의 비관적인 시선과 그대로 포개진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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