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인공지능(AI)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일까. 세계 최고 바둑 고수 이세돌(33) 9단은 “완패였다”며 고개를 떨궜다. 인류의 자존심을 지켜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무너지자 AI가 주도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자가 학습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까지 모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진단했다. 알파고의 ‘변칙적인 수’가 단순히 수 많은 기계적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과 교수는 “알파고의 경기처럼 이제 인공지능 기술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 졌다”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고유 영역으로 꼽혔던 직관과 창의성까지 갖추게 될 인공지능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포심이 첨단기술을 거부하는 사회운동까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쳤다. 과학계에서는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을 디지털화할 경우 인간 고유의 영역도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9단은 10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두 번째 대국에서 211수만에 불계패했다. 이 9단은 전날과 달리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바둑을 뒀다. 그럼에도 졌다. 전날 상대를 파악한 이 9단이 이날 경기만큼은 이기리라 예상했던 과학계와 바둑계는 이 9단의 2연패를 하자 충격에 빠졌다. 김성룡 9단은 “대국 전에는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이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두 판을 보고 나니 그 반대인 것 같다”며 “이제 인간이 알파고에게 한 판을 이기는 게 대성공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전날 패배에 부담을 느낀 이 9단이 이날 한 수 한 수에 장고를 거듭하며 신중하게 대국에 임한 것과 달리 알파고는 소름 끼칠 정도로 냉철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알파고는 인간 바둑 기사였다면 절대 두지 않을 수로 이 9단을 도발했다. 프로 기사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 만큼 어이없는 실수로 보였으나 이는 결국 이 9단의 허를 찌르는 승부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는 매우 창의적인 수를 뒀다”며 “실수로 보였던 수는 결국 더 안전하게 이기기 위해 변수를 없앤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을 5대 0으로 제압했을 때만 해도 찾아볼 수 없던 능력이다. 당시 프로 2~5단 수준으로 평가됐던 알파고의 기량이 불과 5개월 만에 최정상 바둑 기사를 꺾을 정도로 발전한 셈이다.
알파고는 사람이 100가지 경우의 수를 찾아내는 1초 동안 무려 10만 개의 수를 찾아낸다. 여기에 프로, 아마 기사뿐 아니라 자기와 똑같은 알고리즘을 가진 ‘쌍둥이 알파고’와 10만 번 이상 대국을 거쳤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나뭇가지 구조로 배치(정책망)하고 해당 위치에 돌을 놓았을 때 이길 확률을 계산(가치망)하는 두 가지 인공 신경망을 정교하게 향상시킨 것으로 파악된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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