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체들에게 신차 발표회는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수년 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개발한 차에 대한 반응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자리죠. 업체들은 차의 내,외부 디자인과 기능 등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주행성능을 과시하기 위해 시승 기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10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행사장인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친환경 에너지 효율화 R&D기업 새안의 신차 출시행사는 좀 달랐습니다.
새안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2인승 전기차 ‘위드(WID)’와 역삼륜 전기스쿠터 ‘위드유(WID-U)’에 전기 스포츠카 ‘ED-1’까지 3대의 신차를 공개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쎄미시스코, 배터리 기술력을 인정받은 코캄 등과 협업을 했다고 해도 전 직원이 11명인 스타트업이 무려 3대의 전기차를 동시에, 그것도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지 1년여 만에 내놓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전기차들의 스펙도 대단합니다. 새안의 설명에 따르면 안전성과 효용성이 향상된 차세대 배터리 ‘나노 리튬 폴리머 배터리’가 최초로 탑재된 데다, 배터리가 에너지저장장치(ESS) 겸용인 4개의 탈착형 팩으로 이뤄져 어디서나 220V 전압으로 손쉽게 충전이 가능합니다.
온도 등 배터리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외부 요인을 제어하는 배터리환경시스템(BES)도 적용됐습니다. 기존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보다 발전된 설계기술이라고합니다.
위드는 최고속도 130㎞/h에 모터출력이 15㎾(약 20마력), 완전 충전시 시속 80㎞로 최대 120㎞를 달릴 수 있습니다. 전자식 무단변속기(E-CVT)가 적용돼 30도 경사도 오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만 1만5,000대 이상 팔린 르노의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를 압도하는 성능이죠.
가격도 착합니다. 위드가 1,000만원 초반대, 위드유는 그보다 낮게 책정될 예정입니다. 위드유는 당장 6월부터 판매에 들어갑니다. 초소형 자동차에 대한 규정이 신설되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대상에 포함될 경우 전기차를 몇 백 만원이면 굴릴 수 있습니다.
20년간 전기차 개발에 매달려온 이정용 새안 대표이사는 “전문제조업체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준양산 준비를 했다”며 “전기차 1세대 리더로서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집약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전기차인데도 불구하고 이날 공개된 것은 외관뿐입니다. 3대의 차 앞에는 포토라인이 설치돼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위드의 차체와 배터리는 행사장 한쪽에 따로 전시돼 있었습니다. 이러니 배터리와 모터, 변속기가 내부에 어떻게 배치됐고, 실내는 어떤 디자인인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새안 측은 “경쟁사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고, 주행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도 아직은 없다고 합니다.
안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게 차의 본질인데 이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없는 신차 출시행사가 열린 이유는 새안이 배포한 자료에 나와 있었습니다. ‘론칭 행사는 미국 몬트레이시에 위드 조립라인 설비를 구축하기 위한 실무협의의 전제조건입니다.’
스타트업이 획기적인 제품으로 기존 판을 흔들어 준다면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재벌 위주의 산업구조가 고착된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하고요.
만약 상황에 쫓겨 서둘러 신차 출시행사를 열었다면 이제는 빠른 시간 안에 진짜 신차를 보여줘야 합니다. 다행히 새안 측은 “곧 주행이 가능한 장소를 섭외해 공개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스타트업이 우리 기술로 만든 신개념 전기차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그때 나올 것 같습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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