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예비경선 개혁 부른 1968년
정당 지도자들이 뽑던 대선 후보
경선 없이 부통령 험프리가 되자
민주 당원들 반발 후 일반인 참가
민주는 좌클릭, 공화는 우클릭
경선 참가자, 일반 유권자와 달리
정치 관심 높고 정당 소속감 강해
‘더 진보적, 더 보수적’ 후보 지지
같은 듯 다른 ‘예비경선 방식’
대의원 수 배분, 민주는 인구비례
공화는 골고루 추가 배정하고
승자독식 방식도 많이 가미해
한국의 각 당에서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로 짐작할 수 있듯이 선거에서 정당 후보를 어떻게 선출하는지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다. 미국 대선에서는 ‘코커스’(caucus)라고 불리는 당원회의와 ‘프라이머리’(primary)라고 불리는 예비선거를 통해 민주ㆍ공화당 대선 후보가 선출된다. 이번에는 현행 제도를 갖게 된 역사와 후보 선출을 둘러싼 몇 가지 중요한 정치학적 현상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1968년 이후 일반인이 후보 선출 참여
미국 건국 초기에는 대통령 후보를 각 정당의 상ㆍ하원 의원들이 선출했다. 이후 1830년경부터 1968년까지는 주별로 정당 지도자의 모임(이후 코커스 제도가 됨)을 열어 의견을 모은 후 전국적 전당대회에서 결정했다. 1901년 플로리다 주에서 도입된 프라이머리 제도는 불과 몇 개 주에 국한되어 시행됐고, 심지어 프라이머리 결과가 구속력을 갖지도 않았다. 정당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강화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정당 지도자의 영향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프라이머리가 시행된 그 어떤 주에서도 경선을 치르지 않고 오로지 연방과 각 주의 정당 지도자들의 도움에만 의존한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것이다. 그해 4월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이, 5월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는 등 당시 미국은 민권운동과 베트남전 반전운동으로 혼란과 변혁의 시기였다.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서 또 한번 좌절을 맛본 민주당 일반당원들은 개혁을 과격하게 요구했으며, ‘맥거번-프레이져(McGovern-Fraser) 위원회’를 통해 마침내 대선 후보 선출과정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프라이머리를 통해 일반 국민도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커스를 유지키로 한 주는 토론과 투표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으며, 여성과 흑인의 대표성도 크게 높였다. 또 후보 선출과 관련된 제도와 규칙을 주별 정당조직이 아닌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 통합ㆍ관장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당시 대다수의 주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당개혁을 법으로 통과시키면서 많은 주에서 공화당도 자연스레 유사한 제도를 가지게 됐다.
정치학의 고전적인 이론 중 하나인 ‘중위자 투표 모형’(median voter theorem)에 따르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중도적 입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2012년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와 복지 공약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모형이 잘 맞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각 정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참가자들이 일반 유권자들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통 미국 시민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고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높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더 높은 편이고 강한 정당소속감(party identification)을 가지고 있다. 또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같은 소수인종일 가능성이 작다. 따라서 민주당의 코커스나 프라이머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11월 본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반 유권자들보다 이념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이다.
반면 공화당 경선에 참가하는 유권자들은 일반적인 공화당 지지자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더구나 특정한 정책이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슈 활동가’(issue activists)들이 각 정당의 대선 경선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 민주ㆍ공화 양당의 간극을 더 벌어지게 만들어 정당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두 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이념ㆍ정책적으로 양극화되는 현상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11월 본선거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공화당에서 많은 정당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견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1952년 대선 이후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까지 고려 중이다. 이 제도는 경선과정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경우 전당대회 당일 선거인단이 자유롭게 재선거를 하도록 만들어 사실상 정당 지도부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되는 제도이다. 민주당의 경우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돌풍이 현재는 잠잠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코커스와 프라이머리를 통해 선출되지 않고도 바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명 ‘슈퍼대의원’(super delegate)들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전당대회에서 지지하는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논의되었다.
양당 예비경선 차이가 정당 양극화 심화
1968년 민주당 정당개혁 이후 처음 치른 1972년 대선의 경우에는 첫 번째 경선이 3월초에 있었다. 하지만, 불과 4년 후에 치러진 1976년 대선에서 몇몇 주가 1~2월에 경선을 열기 시작했다. 주마다 경선 시기는 각자 정하는데, 일찍 경선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개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전이어서 초기에 언론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면 외부인들이 많이 방문하여 관광 수입이 급증하고 선거 자금도 대거 유입된다. 더욱이 그 주에서 중요한 정책이슈에 대해 후보자들과 양당 지도부가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80, 90년대를 거치며 많은 주 사이에서 더 일찍 코커스와 프라이머리를 개최하기 위해 경쟁이 붙었다. 1976년 대선의 경우 5월에 가장 많은 주에서 경선이 치러졌으나, 1988년부터 2000년까지는 3월이 대선 경선의 달이 되었다. 심지어 2008년에는 2월에 가장 많은 주에서 경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경선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 후보와 정당 모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선거 기간이 길어져서 선거비용이 더 많이 든다. 선거자금이 풍부한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되는데, 선거자금이 많은 후보가 꼭 훌륭하거나 본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일찍 경선하는 주들이 미국 전체의 특성을 대변하지 못하는데, 이런 주들은 대개 인구가 적고 백인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며 대도시가 드문 편이다. 소수인종의 이해를 대변해 보고자 2008년 민주당에서 네바다(히스패닉 인구가 많음)와 사우스캐롤라이나(흑인 인구가 많음) 경선을 일찍 치르도록 했으나, 오히려 다른 주들이 전국위원회 경선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더 일찍 개최하는 바람에 이러한 의도는 퇴색되었다. 2016년에는 민주ㆍ공화 양당 전국위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선시기를 많이 늦추는 데 성공했으나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할 듯하다.
민주ㆍ공화 양당의 코커스와 프라이머리는 첫째, 전당대회에 보낼 대의원의 수를 정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 민주당은 주별 인구에 비례해 대의원 수를 나누어 배정한다. 하지만 공화당은 인구에 비례해 대의원 수를 산정한 후 주별로 일정한 수의 대의원을 골고루 나누어 추가로 배정한다. 따라서 민주당에서는 인구가 많은 주의 이익이 더 강하게 반영되는 반면, 공화당에서는 인구가 적은 주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반영된다.
인구가 많은 주는 대부분 대도시이고 흑인-히스패닉 등의 소수인종이 많아 이념적으로 더 진보적이다. 따라서 원래 진보적 성향인 민주당에서는 보다 더 진보적인 대선 후보가 선출되기에 유리하다. 반대로 인구가 적은 주는 이념적으로 보수적이어서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더 보수적인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정당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둘째, 주별 코커스와 프라이머리를 통해 얻은 득표를 어떤 방식으로 전당대회에 반영하는지도 다르다. 민주당은 모든 주에서 ‘비례대표’(PRㆍproportional representation) 방식을 의무화했는데, 후보들은 각 주에 배정된 전당대회 대의원 수를 후보별 득표에 비례해서 나누어 가진다. 반면 공화당은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방식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해당 주에서 1위를 한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대의원 수 모두를 가져가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차이를 두고 ‘버팔로 사냥에 성공한 공화당원은 고기를 혼자서 몽땅 가져가는데, 민주당원은 캠프파이어 앞에서 가족과 나누어 먹는다’라고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두 정당이 표방하는 분배-재분배 정책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큰 격차로 진 공화당 지도부는 ‘승자독식’제도로 인해 대선 후보가 너무 빨리 결정되는 바람에 흥행에 실패해 결국 패배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2012년 대선 기간엔 4월 이전에 경선을 실시하는 주에는 비례대표 방식을 의무화하는 실험을 해 보았으나, 경선 기간만 길어지고 밋 롬니 후보의 본선 득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는 그 효과가 어떨지 아직 미지수이다.
박홍민ㆍ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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