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61)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축구계 ‘바둑 고수’로 통한다. 아마 4단의 실력자다. 선수와 국가대표 지도자로 스트레스와 늘 힘겨운 싸움을 벌일 때마다 바둑 한 판을 둔 뒤 마음의 안정을 얻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데 지는 날이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
그는 10일 이세돌(33)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이 9단이 잇따라 패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프로 기사들과 바둑을 몇 번 둬봤는데 그들은 한 마디로 천재다. 이세돌 9단이 우세하거나 최소한 대등할 거라고 봤는데 이렇게 돌을 던지다니(이 9단이 두 번 다 불계패)”라며 씁쓸해 했다.
허 부총재는 “축구와 바둑은 닮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먼저 내 말이 산 뒤 상대 말을 잡을 수 있다는 뜻의 바둑 격언이다. 허 부총재는 “축구도 마찬가지다. 일단 수비가 튼튼해야 공격도 힘을 받고 상대를 이길 수 있다”며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부담되는 돌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봉위수기),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사소취대)라는 격언은 축구 전술, 전략과도 꼭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바둑 기풍과 지도 철학도 닮았다고 했다. “나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독학했기에 사실 기풍이라고 할 만 한 건 없다”면서도 “굳이 말하자면 공격적이다. 속기(빨리 두는 바둑)에 능하고 승부처에서 순간적인 판단으로 흐름을 뒤집는 전투 능력은 좀 있는 편이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선수들에게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지레 겁먹지 말 것을 늘 강조한다. 도전도 안 하고 꼬리를 내리는 선수를 가장 싫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 부총재는 바둑과 달리 축구는 앞으로도 인공지능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축구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다. 어떤 기계가 나와도 흉내조차 낼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인공지능까지는 아니지만 축구도 최근 과학의 힘을 일부 빌려 쓰고는 있다.
대표적인 게 심판 판정이다. 축구에서는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고 한다. 심판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지만 그것도 수용하고 인정하자는 의미다. 다른 종목에서 잇따라 비디오판독을 도입할 때도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런 이유로 꺼려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달라졌다. FIFA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처음으로 골라인 판독 시스템을 사용했다. 축구 규칙상 공 전체가 골라인을 완전히 통과해야만 득점으로 인정되는데 빠르고 강한 슈팅이 골대에 맞고 골라인에 떨어질 찰나의 순간 심판의 눈으로 가려내기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종종 논란이 있었는데 브라질월드컵에서 선보인 골라인 판독 시스템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판정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또 앞으로는 페널티킥처럼 득점과 직결되는 판정이 애매할 경우 사후 비디오판독으로 진위를 가리는 방법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미 네덜란드 프로리그 등에서는 시범 운영 중이다. 허 부총재는 “억울한 패배는 없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골라인이나 비디오 판독은 찬성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 축구의 본질이 흐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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