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29ㆍ러시아)의 금지약물복용 ‘고백’ 후폭풍이 골프계로 번지고 있다. 샤라포바가 2006년부터 복용한 것으로 드러난 멜도니움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지정한 금지약물 목록에서 빠져있어 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샤라포바는 부정맥과 가족력이 있는 당뇨병 때문에 멜도니움을 복용했다고 털어놓았다. 멜도늄은 협심증과 심근경색 치료제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 달리 운동선수들에게는 빠른 회복과 운동능력을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악용돼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지난해 9월 29일 멜도니움을 금지 대상에 올렸고 올해 1월 1일부터 금지약물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멜도니움이 위험한 이유는 신체 일부의 혈액순환 부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단순히 PGA 금지약물 리스트에 멜도니움이 빠져있다고 해서 우려가 커지는 건 아니다. 골프는 힘보다는 유연성과 정신력을 우선시하는 인식이 강해 그 동안 금지약물 검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2008년에야 도핑검사를 시작했고 강도도 약한 편이다. 체혈 검사는 하지 않고 소변 검사로만 대체한다. 문제는 선수들이 쓰는 약물에는 힘을 상징하는 스테로이드 같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멜도니움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HGH(성장호르몬)가 대표적이다. 부상 회복을 돕고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약물인데 이는 소변 검사만으론 적발되지 않는다.
샤라포바의 ‘폭탄 선언’이후 골프계가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인지하고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건 다행스럽다. PGA 투어 약물정책부문 실무 감독과 미국 골프 실무 감독을 겸하고 있는 앤디 레빈슨은 10일(한국시간) 골프전문매체 골프매직과 인터뷰에서 “초가을인 10월쯤 금지약물 리스트를 새로 작성하는 데 그때 당시 멜도니움은 WADA에서 금지하지 않은 약물이었다”라며 멜도니움이 빠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올해 다시 업데이트할 시기(10월쯤)가 오면 멜도니움을 금지약물 리스트에 반드시 올릴 것”이라고 못 박았다.
멜도니움 제외 논란에 즉시 대처하는 이 같은 자세는 바람직하나 보다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멜도니움은 소변 검사만으로 추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PGA투어 측은 핵심인 체혈 검사를 은근슬쩍 빠뜨린 것. 다가올 10월까지는 멜도니움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골프는 더 이상 약물 청정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난해 7월 PGA 투어 3승에 빛나는 스콧 스털링스 등 모두 3명이 적발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외부적으론 1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로 돌아오는 골프 선수들이 당장 5월 6일부터 불시에 올림픽 수준의 도핑 테스트를 받게 된다. 정재호기자 kem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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