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엑소더스(Exodusㆍ탈출)의 신호탄인가?
KBS의 중견급 드라마 PD 세 명이 동시에 사표를 던져 방송가에 충격을 주고 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 출범 즈음 겪었던 인력 대량 유출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KBS가 이들이 이적할 것이 유력한 종편을 공격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보도국 내 꾸렸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10일 KBS 드라마국에 따르면 함영훈, 전창근, 김진원 PD가 다음달 1일자로 회사를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드라마국 관계자는 “모두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표를 냈고 추후 거취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종편 4사 중 드라마 제작에 가장 열의를 보이는 JTBC가 이들을 영입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나 JTBC 드라마국 관계자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1년 종편 출범을 전후로 이미 크고 작은 인력 유출을 경험한 KBS지만 세 PD의 동시 이탈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가 또 한 차례의 대규모 이탈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KBS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국은 물론 전 부서 구성원들이 놀란 게 사실”이라며 “연이은 부진으로 침체됐던 KBS 드라마가 최근 (‘태양의 후예’로)활기를 찾기 시작한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함 PD는 3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KBS 드라마국에 모처럼 웃음을 안겨 주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기획한 책임프로듀서(CP)다. 한 매체는 ‘태양의 후예’를 공동 연출한 이응복, 백상훈 PD가 함 PD와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S 관계자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이 PD는 현재 ‘태양의 후예’ 편집에 정신이 없는 상태이고 백 PD는 개인 휴가를 떠났다”고 전했다.
전 PD는 ‘직장의 신’(2013), ‘가족끼리 왜 이래’(2015) 등) 등으로, 김 PD는 ‘참 좋은 시절’(2014), ‘너를 기억해’(2015) 등을 연출하며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두 사람은 미니시리즈와 연속극을 오가며 두루 실력을 발휘해 사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KBS 등 지상파TV가 케이블TV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를 꾀하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여주고 있어 인력 이탈 가속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케이블 채널 tvN의 눈부신 활약으로 방송지형에서 지상파는 패권을 잃은 지 오래다. ‘삼시세끼’의 나영석 PD를 비롯해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 드라마 ‘미생’과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PD 등은 친정 KBS를 떠나 tvN에서 승승장구 중이라 KBS 옛 동료들을 자극할 만하다. 나 PD 등은 하나 같이 “젊고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케이블로의 이적 배경으로 밝히고 있다.
지상파방송의 한 관계자는 “고위 간부들 중 tvN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며 “대중은 이미 지상파를 버렸는데도 지상파란 이름만 믿고 예전 시스템을 밀고 나가려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성명을 내고 “PD들의 사표 소식에 사측이 5~6명의 보도국 기자들로 TF를 구성했다”며 JTBC를 대상으로 한 보복 취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조는 “TF 구성이 실제 보도로 이어진다면 ‘공영방송의 사유화’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당장 TF를 해체하고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일했던 동료들의 이탈에 대해 KBS 구성원 모두 자성할 때”라고 주장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명 전문>
‘우리 PD 빼갔으니 조져!’
드라마국이 위기다. 드라마 PD 3명이 한꺼번에 사표를 냈다. 3명은 함께 같은 종편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가 내놓은 대책이다. 갑작스럽게 보도국에 기자들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팀이 구성됐다. TF의 타깃은 ‘우리 PD들을 빼간’ JTBC와 사주인 홍석현 회장이다.
우선 너무 창피하다. 이게 대한민국 최고 공영방송이 취할 방법인가? 이게 사측 당신들이 말하는 KBS 저널리즘인가?
드라마 PD들의 사표 소식에 고대영 사장이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TF가 급조됐다는 얘기가 떠돈다. 그러나 우리 조합은 고 사장이 이런 지시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보도국이 이른바 ‘오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누가 이런 지시를 내렸느냐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만일 이 TF가 실제로 보도까지 이어진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공영 방송의 사유화’, ‘보복 취재’ 등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PD들이 돌아오지도 않는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싸움을 왜 자초하는가? JTBC가 윽박지른다고 말 듣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가? 매일 저녁 인터넷 포털에 동시에 올라오는 ‘KBS뉴스9’와 ‘JTBC 뉴스룸’에 대한 의견들을 좀 살펴봐라. 그게 현실이고 시청자들의 평가다.
더구나 이러한 이른바 ‘보복적 성격의 뒷조사’ 목적의 취재 지시는 기자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없으며 방송법과 방송편성규약이 금지하고 있는 ‘양심과 신념’에 반하는 취재 및 제작 지시이며, 노동자에 대한 정신적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
심지어 사표를 낸 PD들 상대로 회사가 소송을 하겠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이 정도면 사측에게 제 정신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제발 냉정해지길 바란다.
사실 우리 동료들이 줄줄이 일터를 떠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드라마와 예능이 갈수록 어렵고 위기인 게 어제 오늘의 얘기인가? 더구나 이런 구성원 이탈과 위기 상황은 우리 KBS만의 문제가 아닌 MBC와 SBS 등 지상파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상황과 조건을 도외시한 채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일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혹시 시청률이 좋지 않다며, 광고 수입이 적다며 손가락질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것도 모자라 동료들의 창의력을 무시하고 권한마저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사측은 물론 KBS 구성원 모두 자성해봐야 한다.
당장 보도국 TF를 해체하라.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에 집착하지 말고, 남아있는 우리 동료들을 생각하라. 인력 유출이 걱정된다면 TF는 보도국에 만들 것이 아니라 드라마국에, TV본부에 만들어야 한다.
거듭 촉구한다. 여기서 멈추길 바란다.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은 조금이라도 남겨둬야 하는 게 아닌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그제와 어제 그리고 오늘, 전화는 물론이고 직접 본관 6층과 보도국을 오가며 ‘이번 TF 구성이 이치에도 맞지 않고 실익도 없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알리고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부사장을 비롯한 사측 간부들은 이런 의사를 직접 전달하려는 조합 집행부를 문전박대로 일관했다. 결국 조합은 ‘공론화’를 통해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2016년 3월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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