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부터 충격의 패배를 경험한 이세돌 9단은 10일 신중하고 묵직했다. 1국에서 알파고를 시험해보려 했던 이 9단은 오히려 자신을 시험하듯 변수를 펼치는 알파고를 묵묵히 받아 쳤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이세돌 9단은 1국이 치러진 전날보다 다소 수척한 모습으로 대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으나 굳게 입술을 다물고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전날 대국 직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가 이 정도로 완벽하게 바둑을 둘 줄 몰랐다”며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한 것처럼 방심하지 않고 대국에 임하겠다는 자세가 표정에서 엿보였다. 경기 시작 10분이 지난 뒤에는 아내 김현진(33)씨와 딸 혜림(10)양이 한국어 공식 해설장을 깜짝 방문했고 혜림양은 스크린 속 이 9단을 향해 ‘파이팅’ 하는 손동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9단의 신중한 태도는 경기 초반부터 드러났다. 지난 1국에서 이세돌은 초반부터 변칙적인 수를 두며 알파고를 자극했다. 5개월간 향상된 알파고의 실력을 파악하는 동시에 흔들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오히려 정반대의 형국으로 흘러갔다. 알파고가 정석을 바탕으로 변칙적인 전략을 사용한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초반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수를 선보인 것이다. 13수에 알파고가 예상 외 수를 두자 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은 “아마추어가 저렇게 두었다면 사범에게 혼나는 수”라며 “하지만 어제도 의외의 수가 결국 전략적인 수였음이 드러났으니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세돌은 전날과 달리 알파고에 말리지 않기 위해 안전한 수를 택했다. 경기 중반까지 이 9단은 알파고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을 사용할 정도로 장고하는 모습이었다. 유 9단은 “이 9단이 알파고를 과하게 의식한다고 생각할 만큼 평소의 이세돌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며 “어제 알파고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감안, 가장 무난한 수를 두는 것 같다”고 평했다.
경기 시작 중반까지 여러 차례 알파고의 변칙적인 수가 나와 공격적으로 나가야 할 때도 이 9단은 인내했다. 알파고가 일정한 부분을 방치하는, 바둑용어로 ‘손을 빼는’ 수를 두었는데도 이 9단은 이를 응징하지 않고 안정적인 수를 찾아갔다. 유 9단은 “알파고가 전반적으로 과한 수를 두는데도 이 9단이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고 있다”며“빈틈없이 안정적인 바둑을 두는 이창호 9단 같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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