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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떴다방’ 복지정치

입력
2016.03.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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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이 한 달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총선도 정책선거가 아니다. 표심에 호소하는 포퓰리즘만 횡행할 뿐, 부랴부랴 내놓는 것들이라곤 포장만 그럴듯한 백화점식 공약들뿐이다. 요식행위로 살포하는 이런 종류의 부실한 공약들이라면 차라리 ‘빌 공자 공약(空約)’이 돼버리라고 염원해야 할 지경이다.

소선거구제 총선이란 지역구 단위 인물경쟁이다. 국가차원의 정책논쟁이 이슈화되기는 힘든 까닭이 거기에 있다. 세력 간의 ‘패싸움’이나 ‘물갈이 공천’에만 이목이 집중될 뿐, 정당들이 쏟아내는 공약들은 뉴스 대접도 받질 못한다. 한탕주의가 판치는 ‘떴다방’식 선거공약,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복지전략을 도출한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세 다툼뿐인 선거정치에 기대서는 반짝 공약을 넘어선 백년대계의 작성이 불가한 법이다.

역대최악의 무능국회로 평가 받는 19대 국회. ‘역대급’의 화려한 복지공약으로 선거를 치렀던 19대 국회지만, 백년간 지속될 복지전략의 청사진에 관한 논의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이런저런 개혁과정에서 ‘대타협’이라 자화자찬한 것들마저 고작 몇 년짜리 땜질 처방에 그쳤다. 본격적인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시작되었음에도 지엽적인 개혁의 시늉에만 그친 4년, 시대적 과제에 관한 무지몽매만 기억될 판이다. 근본적인 전략적 방향성에 관한 합의노력은 씨앗조차 못 뿌린 ‘찌질함’이 19대국회의 자화상이다.

무소불위인줄 알았던 대통령의 힘으로도 해내기 힘든 것이 적폐청산과 구조개혁임도 명백하게 밝혀졌다. 제도개혁은 입법에서 시작되는지라 국회의 몽니 앞에서는 대통령 권력조차 초라해 보인다. 국회선진화법이 ‘망국의 법’이라 저주하기도 하지만, 이럴수록 챙겨야 할 것은 호혜적 토론에 근거한 설득의 정치다. 세상사에 완벽한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없으니 옳은 얘기라도 설득이 필요한 법이다. 길게 갈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절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끊임없이 토론하는 수밖에 없다. 다수결의 반짝 정책으로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합의에 기초한 장기 전략을 완성하는 게 두고두고 박수 받을 유일한 길이다.

20대 총선에서 여야의 승패가 어떤 모습으로 갈릴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부터라도 신경 써야 할 것은 백년이 갈 대타협을 위한 공론화의 멍석부터 까는 일이다. 4년짜리 국회나 5년 단임의 대통령 힘만으로는 한 세기를 견뎌낼 국민적 합의의 완성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복지체계는 얼기설기 초가집 수준이라 터 닦기부터 다시 할 판이다. 군데군데 사각지대가 만연한 체계인지라 우선순위에 입각한 틀 바꾸기가 긴급하다.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주는 게 복지의 기본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어려운 사람에게도 노력이 보람이 될 수 있는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일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우면 생활보장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열심히 일하는 빈곤층은 사회보험의 혜택조차 받기 힘들다. 보육, 요양, 의료 등등의 복지시장에서는 ‘업자형(型)’ 공급자들이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종사자 처우는 열악하다 보니 복지 서비스 만족도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복지지출이 100조원을 훌쩍 넘어 150조원을 바라보는 지금, 불공정하고 무원칙한 복지체계에 관한 개혁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그리스 꼴이 나고 말 것이다.

저성장이 일상인 시대,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새로운 해결책 중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것이 복지체계의 구조개혁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한국형 복지국가 개혁에 관한 사회적 합의부터 서둘러야 한다. 어떤 복지를 누구에게 얼마만큼 주어야 할지. 복지에 드는 돈은 누가 얼마나 내도록 할지.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정부는 뭘 해야 하고 민간의 역할은 어때야 할지. 후세에 물려줄 공정한 복지전략에 관한 세기적 합의가 필요한 지금, 이를 실현할 정치인들이 등장하려면 ‘시민적 각성’이 중요하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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