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시간 초과’ 우려돼 조종 거부
사측 “브리핑 길었다” 고의성 의심
“대기발령 때부터 예상했던 결과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 기장직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에서 만난 박종국(50) 대한항공 선임기장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11년 만에 쟁의행위에 돌입한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과 사측 간 갈등 속에 그는 운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파면될 위기에 몰렸다.
공군 복무 기간까지 합해 비행경력 28년인 박 기장은 지난달 21일 필리핀 마닐라발 인천행 여객기(KE624편)를 조종하지 않았다. 단체협약엔 ‘연속된 24시간 이내 12시간 초과’ 근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는데, 운항을 하게 되면 근무 시간이 4분 초과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항공 운항본부는 지난 7일 자격심의위원회를 열어 박 기장의 파면을 의결했다.
그는 “자격심의위에 노조원 3명이 들어가지만 사측 위원이 더 많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며 “그날 상황을 소명하자 현장에선 아무도 반박을 못했는데 역시나 위에서 결정한 대로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파면 쟁점은 12시간 운항 기준과 고의성 여부다. 사측은 “항공교통사유 등 비정상 상황에서는 1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데도 승객안전과 불편을 볼모로 비행을 거부했고, 운항 전 브리핑을 평소보다 3배나 길게 해 출발을 지연시킨 고의성이 있어 기장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박 기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비상시 14시간 근무를 할 수 있지만 폭설 등 기상 이변이나 항공기 정비 등 비정상적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며 “당시 필리핀에 24분 지연 도착했는데, 이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로 지금까지는 비상상황에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고의성에 대해서는 “1년여 만에 조종하는 마닐라 노선인데다 그날 따라 마닐라 공항 노탐(항공고시보)도 A4용지 15장이나 돼 평소보다 브리핑 시간이 더 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기장은 항공기 조종 때 단 몇 분이라도 근무시간을 초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2시간 근무 규정은 안전운항을 위한 기준이고 해외 항공사들은 철저히 이를 지킨다”며 “우리는 기준을 초과하는 일정을 잡아 놓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했다.
박 기장은 중앙상벌심의위원회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지만 노조원은 한 명도 위원회에 속하지 않아 징계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예전 소송 사례를 보면 3년은 싸워야 할 것 같다”며 “항공기 운항 안전을 위해서라도 회사가 잘못한 점을 계속 지적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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