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의 왕실제도를 남녀평등에 어긋난다고 권고하려다 일본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무산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9일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따르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왕위계승 자격을 아버지로부터 혈통을 물려받은 남성인 ‘남계남자’(男系男子)로 한정한 일본의 ‘황실전범’(皇室典範)이 여성을 차별한다는 내용을 여성차별 심사보고서에 담았다. 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와 함께 어머니로부터 왕실의 피를 물려받은 여성도 일왕이 될 수 있도록 수정을 요구하는 최종안을 지난 4일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최종안에 담긴 내용을 철회하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충분한 논의 없이 돌연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절차상 결함이 있는데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왕실제도를 국제사회가 다루는 게 적절치 않다는 반론을 폈다. 이에 스위스 제네바 현지시간 7일 발표된 최종 보고서엔 결국 관련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성역이나 다름없는 왕실문제를 유엔이 언급한 것에 대해 일본의 보수언론들은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산케이신문은 “위원회측이 얼마나 각 나라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고 격앙된 어조로 보도했다.
황실전범의 성차별 논란은 향후 일본 내에서 민감한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만일 황실전범이 여성에게도 왕위 계승을 허용하도록 바뀐다면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딸인 아이코(愛子ㆍ15)도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서열 2위인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들이 없고 동생인 후미히토(文仁) 왕자의 아들 히사히토(悠仁ㆍ10)가 나루히토 왕세자에 이어 서열 3위인 상태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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