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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투표 강행” 정부 “징계”… 살풍경한 광주시청

입력
2016.03.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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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노 가입 문제 놓고 대립각

행자부, 투표소 등 감시활동 압박

윤장현 시장 호소문 내고 복무점검

직원들 심리적 위압감 느껴 혼란

9일 오후 광주시청 1층 로비에 광주시공무원노동조합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가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촉구하는 피켓이 세워져 있다. 노조는 근무시간 중 투표행위에 대해 불법 시비가 일자 근무시간 외에만 투표소를 설치해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9일 오후 광주시청 1층 로비에 광주시공무원노동조합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가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촉구하는 피켓이 세워져 있다. 노조는 근무시간 중 투표행위에 대해 불법 시비가 일자 근무시간 외에만 투표소를 설치해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살풍경(殺風景)하다고 봐야죠.”

광주시공무원노동조합이 ‘법외단체’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가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시작한 9일 낮 12시40분쯤 광주시청 1층 로비. 노조가 설치해 놓은 투표소를 흘깃 쳐다보며 지나가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투표하면 징계를 하겠다고 하니 이거 뭐 협박도 아니고….” 말끝을 흐리던 그는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였다. 이날 투표를 강행한 노조와 이에 맞서 ‘징계의 칼’을 뽑아 든 행정자치부가 함께 만들어낸 살벌한 풍경이 종일 시청 안팎을 휘감았다. 양측 모두 투표를 둘러싼 물리적 충돌은 피했지만 쓸쓸하고 스산하면서도 살기마저 띤 광경은 곳곳에서 연출됐다.

노조는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1층 로비와 지하 1, 2층 엘리베이터 앞, 노조사무실 등 4곳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를 시작했다. 노조는 불법 시비를 피하기 위해 근무시간이 아닌 오전 7~9시, 낮 12시~오후 1시, 오후 6~7시 사이에만 투표소를 설치하고 조합원들(1,320명)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노조는 11일까지 투표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광주시 공무원노조 조합원이 9일 오전 근무시간을 피해 광주시청 1층 로비에 마련한 투표소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시 공무원노조 조합원이 9일 오전 근무시간을 피해 광주시청 1층 로비에 마련한 투표소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날 투표소를 찾은 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날 행자부가 “투표행위 자체가 불법”이라며 투표를 주도한 노조 간부 4명을 고발하면서, “투표행위에 대해 사후 징계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는 말이 괜한 허풍이 아님을 보여준 탓이었다. 게다가 행자부가 18명으로 구성된 조사반을 파견, 투표행위에 대한 ‘감시’에 나선 터였다. 행자부는 “투표 관련 모니터링”이라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직원들은 거의 없었다. 시는 조직표를 들고 사무실을 돌며 복무점검을 실시해 직원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한 하위직 공무원은 “행자부와 시가 복무점검을 진행하고 투표 관련 모니터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직원들은 엄청난 심리적 위압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와중에 윤장현 광주시장과 실ㆍ국ㆍ사업소장 이상 간부들이 직원들에게 사실상 투표 자제를 요구하는 호소문을 뿌려 직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근무시간 외 투표를 허용하겠다”던 윤 시장 등이 갑자기 다른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직원들 사이에선 “윤 시장이 앞에선 투표를 허용한다고 해놓고 정작 뒤에선 간부들을 동원해 투표를 막고 있다”, “시장을 잘못 뽑았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투표 저지를 위한 정부와 시의 전방위 압박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은 노조 집행부로 향하기도 했다. 한 직원은 “전공노 가입 이유에 대한 노조의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투표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도 안 된 것 같다”며 “더구나 노조 집행부 중심의 투쟁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선 벌써부터 이번에도 정족수 미달로 전공노 가입이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조는 2010년 4월과 2014년 1월에도 전공노 가입 투표를 실시했지만 모두 투표율이 과반을 넘지 못해 무산됐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투표를 둘러싼 법리 공방을 떠나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직원들이 위축돼 투표를 꺼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며 “이러다가 전공노 가입이 또 실패로 돌아가 이를 밀어붙인 노조와 투표에 가담한 직원들만 상처(불이익)를 입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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