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은 개에게도 적용된다. 나보다 늦게 태어나 일찍 늙어가는 반려견을 지켜보는 일은 반려인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견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신체의 기능이 저하되고 만성 질병에 시달린다.
노령견에게 발생하는 질병 중 많은 반려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질병이 하나 있다. 바로 ‘인지기능장애증후군’, 쉽게는 ‘치매’라고도 부른다.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은 몸의 다른 기관들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만, 뇌는 노화하고 병변이 일어나 생기는 질병이다.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진이 필요하지만, 반려견의 행동이 다음과 같이 변한다면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1. 공간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반려견에게 친숙했던 공간임에도 인지기능장애증후군에 걸린 반려견은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장애물에 걸려 어쩔 줄 몰라 한다.
2.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물이나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보호자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거부한다던가 반대로 보호자에게 예전과는 다르게 더 집착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3. 활동량이 증가한다. 인지기능장애증후군으로 뇌에 이상이 생긴 반려견은 목적 없이 계속 걸어 다니거나 한자리에서 계속 맴돌 수 있다. 보호자나 특정 사물을 계속 핥기도 한다. 이유 없이 쉬지 않고 짖거나 하울링(개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길게 짖는 것)을 하기도 한다. 식욕이 더 많아지고 밥 먹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경우도 있다.
활동량이 증가하는 반려견을 본 보호자들은 반려견이 건강한 상태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반려견이 필요한 활동량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 반려견의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쉬어야 할 때 뇌의 이상으로 인해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는 반려견은 매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위와 반대로 활동량이 감소하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좋아했던 보호자와 함께 하는 놀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움직임을 거부할 수도 있다. 식욕도 떨어진다.
5.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분리불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6. 낮과 밤의 생활리듬이 바뀌고 수면의 주기가 불규칙적이다.
7.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대소변을 잘 가렸으나 잠자리에 배변을 하거나 보호자가 옆에 있는데도 여기저기에 배변할 수 있다. 또 예전에 잘 알아들었던 지시어에 반응하지 않거나 반려인과 의사소통 하려는 의욕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인지기능장애증후군에 시달리는 반려견이 위의 행동을 모두 동시에 보이지는 않는다. 특정 몇 가지의 행동만 관찰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알츠하이머병과 마찬가지로 반려견의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을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 초기에 발견하였을 때 화학적 약물치료, 항산화제, 영양제 등의 도움으로 증세가 악화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또 노령견의 인지 기능을 자극시키는 훈련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보호자는 행동이 변한 반려견에게 맞춘 생활환경을 새롭게 조성해주는 것이 좋다.
이혜원 수의학 박사(충현동물종합병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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