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서 시인… 테니스계 충격
올해 1월 호주오픈서 멜도니움 검출
“부정맥 등 치료 위해 복용… 큰 실수
다시 코트로 돌아갈 것” 은퇴설 부인
ITF “결과 나올 때까지 자격 정지”
세계 테니스계가 충격에 빠졌다. 여자테니스의 ‘아이콘’ 마리아 샤라포바(29ㆍ러시아)가 금지약물 복용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샤라포바는 탁월한 기량과 빼어난 외모를 겸비해 11년 연속 여성 스포츠선수 수입 랭킹 1위를 달릴 정도로 여자 테니스의 흥행을 이끌던 선수여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샤라포바는 8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지약물 적발 사실을 발표했다. 샤라포바는 “올해 1월 열린 호주오픈 도핑검사에서 멜도니움이 검출됐다. 모든 건 내 책임이다”고 인정했다. 샤라포바는 호주오픈 8강전에서 서리나 윌리엄스(35ㆍ미국)에 0-2로 패한 뒤 실시된 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샤라포바가 복용한 멜도니움은 신진대사와 운동 후 회복능력을 향상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는 이유로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올해 1월 1일부터 금지약물로 지정했다. 멜도니움은 부정맥이나 심근경색 등 허혈성 질환 치료를 위해 개발됐다. 러시아 등 동유럽 지역에서는 치료제로 쓰이지만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승인하지 않은 약물이다. 러시아 사이클 선수와 그루지야 레슬링 선수 등 6명도 같은 약을 복용해 이번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WADA는 멜도니움을 포함한 금지약물 리스트를 이메일을 통해 지난해 12월 22일 선수들에게 보냈다. 2006년부터 부정맥과 당뇨병 때문에 이 약을 복용해왔다는 샤라포바는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정말 큰 실수를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지만, 이런 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싶지 않고 다시 코트로 돌아가길 희망한다”며 은퇴설을 부인했다.
국제 테니스 연맹(ITF)은 기자회견 직후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샤라포바의 선수 자격을 잠정적으로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ITF는 금지약물 복용에 대해 최대 4년간 자격을 정지할 수 있으며, 멜도니움의 경우엔 보통 자격정지 1년 징계가 내려진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등의 정상이 참작될 경우 징계 수위가 낮아질 수도 있지만 금지약물 복용에 엄격하게 대처하는 최근의 추세로 미뤄볼 때 징계 자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샤라포바는 호주오픈 8강 상금 37만5,000 호주달러(약 3억3,000만원)를 반납해야 한다. 또 올해 8월 열리는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샤라포바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러시아에 단식 은메달을 안겼다. 샤밀 타르프셰제프 러시아테니스연맹(RTF) 회장은 러시아 국영통신 타스를 통해 “이번 일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운동선수들은 의사와 물리치료사의 처방에 따른다”며 “샤라포바가 올림픽에 출전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일단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샤라포바에 대해 높은 징계가 내려질 경우 여자 테니스 흥행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샤라포바는 2004년 17세의 나이로 윔블던 정상에 오른 이후 5차례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2012년엔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샤라포바는 지난해 2,970만 달러(약 358억원)를 벌어들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여성 스포츠선수 수입 랭킹에서 11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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