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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원음표기 탓 한자가 외계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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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원음표기 탓 한자가 외계어 됐다”

입력
2016.03.0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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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교수.
김병기 전북대 교수.

“이영애는 ‘리링하이’, 송혜교는 ‘송헤이자오’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서울을 ‘首爾’라 불러달라고 먼저 지어다 바쳐야 하는 겁니까.”

중국어 원음표기 원칙을 비판한 ‘북경인가, 베이징인가’(어문학사)를 내놓은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는 8일 이렇게 말했다. 상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얘기인데 이건 단순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1997년 외래어표기법 개정에 따라 만들어진 원음주의 표기법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음주의란 중국어 지명과 인명을 원음 그대로 쓰고 읽는 것이다.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 성룡이 아니라 청룽이라 쓰고 읽자는 의미다.

김 교수는 “원음주의 원칙은 중국어가 과거 동북아지역 공통문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철두철미하게 한자를 외국어 취급해야 한다는 한글전용론자들의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라면서 “그 때문에 2,000년 한자 문화권에 살면서 한자를 우리 글자처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금은 한자 단어를 그야말로 외계어처럼 만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싼샤는 취탕쌰ㆍ우샤ㆍ시링샤로 나뉜다”는 문장은 “삼협(三峽)은 구당협ㆍ무협ㆍ서릉협으로 나뉜다”가 더 쉽다. 탁 봐도 협곡 3개가 있고 그 협곡 3개의 이름이 이렇다는 설명으로 읽힌다는 설명이다. 그냥 싼샤 어쩌고 해봐야 따로 뜻풀이가 없으면 그게 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 교수는 “대학원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봤는데 모두의 반응이 한결같이 원음주의 표기가 훨씬 더 어렵고 불편하다는 쪽이었다”고 말했다.

거기에다 원음으로 표기했다지만, 우리 표기법 자체가 중국어의 다양한 발음 뉘앙스를 살릴 수도 없다. 이를 메우려다보니 롄, 볜, 녜, 췬, 돤 같은 희한한 글자들을 써야 한다. 여기다 사성까지 더하면 원음표기대로 쓰고 읽어봤자 정작 중국인들은 이해하지도 못한다. 김 교수는 “신문에서야 ‘요우커’(遊客)라 쓰고 ‘빠링허우’(八零後)라고 쓰면 된다지만 방송에서 이 단어를 중국어처럼 발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어느 누구에도 이롭지 않은 원음표기를 왜 고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영어처럼 우리 말과 완전히 다른 말의 표기야 어쩔 수 없이 원음주의 원칙을 적용한다 해도, 우리 글로 써온 한자를 굳이 그렇게 쓰고 읽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20년의 세월이 있다. 묘한 게 버릇이라 ‘습건평’보다는 ‘시진핑’이 더 귀에 익숙하다. 어쩌면 아직 원음주의 표기가 귀에 익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덜 익숙해서일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언어의 기본을 생각하세요. 언어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 발음을 능란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뜻을 알 수 없도록 해서는 안됩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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