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정책연구소, 경찰 1354명 설문 보고서
75% “외근자 모두 권총 휴대해야”
현재 한 명만 지녀 극한상황 대응 못해
경찰, 보고서 바탕 장기과제 설정
일부에선 “총기사고 땐 파장 커” 신중론
외근 경찰 10명 중 7명은 범인을 직접 상대하는 형사뿐 아니라 순찰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들도 권총을 휴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갈수록 흉포화하는 범죄에 맞서 일선 경찰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기 과제로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지만 살상 무기인 총기 사용에 거부감이 큰 국내 정서 상 정책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7일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7, 8월 서울ㆍ부산ㆍ광주ㆍ경기경찰청 산하 지구대와 파출소에 근무 중인 외근 경찰관 1,3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휴대무기에 대한 인식’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6%(1,010명)는 “외근경찰 전원이 권총과 테이저건(전자충격기), 삼단봉, 최루액 분사기를 모두 휴대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적극 찬성은 35.8%(485명), 대체로 찬성은 38.8%(525명)였다. ‘보통’(11.3%ㆍ153명)을 포함해 부정적 의견은 25.4%에 그쳤다.
이번 연구는 순찰 경찰이 휴대한 무기 성능 한계로 위급 상황에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이뤄졌다. 현행 ‘지역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는 2인 1조로 구성되는 외근 경찰의 경우 한 명이 권총 1정을 휴대하고, 다른 한 명은 테이저건이나 최루액 분사기를 구비하도록 돼 있다. 삼단봉 휴대는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는 피의자 저항 등 돌발사태가 자주 발생해 권총을 휴대하지 않았던 경찰이 다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실제 지난해 2월 경기 화성에서는 테이저건만 휴대했던 경찰이 피의자가 쏜 사냥용 엽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선 외근 경찰들은 총기 휴대를 적극 옹호하는 분위기다. 20여년 간 현장 업무를 담당한 서울 A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는 “현장에서는 사건 관련자의 자해나 위협 등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규정만 고집할 경우 기민한 대응이 쉽지 않다”며 “평소에도 권총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으니 일괄 휴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구를 수행한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우리 법원은 경찰의 총기 사용시 합리적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데다 경찰관 스스로도 잠재적 징계나 소송 가능성을 감안해 사용을 꺼리고 있다”며 “모든 경찰이 총기를 갖고 출동해도 남용 우려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범죄 진압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국내 치안정책 특성상 일률적인 총기 휴대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총기 범죄가 다반사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작은 총기 사고에도 여론이 크게 출렁인다”며 “총기를 대하는 국민 감정을 고려할 때 일괄 휴대는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경량 권총 지급 등 외근 경찰의 무기 선택과 관련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현장 경찰관이 피습 당하는 일이 늘면서 휴대 무기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해외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법원 판례와 국민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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