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 중에는 장수한 이들이 많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극작가 버나드 쇼 등이 90세 넘게 살았다.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한 사람들이다. 손을 자주 사용하면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해 뇌기능을 젊게 하고 노화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의학계의 설명이다. ‘취미와 직업이 같다’는 점도 장수의 조건이다. 창조의 고뇌가 초래한 광기를 못 이겨 단명한 천재들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예술활동은 ‘좋은 스트레스’에 속한다고 한다.
▦ 예술가들에게 맛있는 음식은 창작의 스트레스를 덜어 준 안식처였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은 창조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윤활유였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은 평균수명 40세 안팎이던 시절에 76세까지 살았다. 그가 레스토랑에서 쇠고기 생선 등 16가지 음식을 주문하자 웨이터가 “몇 사람이 더 올 거냐”고 물어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자기 여덟 형제의 평균 수명보다 2배 이상 더 살았다. 그는 창작의 고통을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극복하며 다작(多作)을 했고 20명의 자식을 뒀다.
▦ 국내 예술가의 사망통계는 이런 통설과 어긋난다. 원광대 연구팀이 1963~2010년 언론에 난 3,215명의 부음기사 등을 바탕으로 11개 직업군별 평균수명을 비교했더니 연예인ㆍ예술인 70세, 작가 67세로 최하위권이었다. 종교인(80세), 정치인(75세), 교수(74세), 기업인(73세)에 비해 크게 낮았다. 예술가들의 생활이 겉으로는 화려해도 치열한 경쟁 탓에 심리적 압박이 예상 외로 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이 늘어난 것도 불규칙한 생활과 과중한 스트레스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물론 생활습관도 중요하지만, 대체로 경제력과 직결된다. 무직자의 평균수명이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14년 이상 짧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화부가 최근 공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의 67%가 월평균수입 100만원 이하였다. 국민연금(56.8%)과 고용보험(25.1%) 가입률도 저조했다. 소득 및 복지수준과 사회인프라가 예술가의 수명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4대 보험 등 인간다운 삶의 기본조건을 마련해 줘야 문화융성도 가능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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