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수식어이긴 하지만 배우에게 ‘믿고 본다’는 말 이상의 극찬이 또 있을까.
배우 조진웅(41)과 이성민(48)은 이런 칭찬이 아깝지 않은 국내 몇 안 되는 배우다. 지상파 채널의 드라마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주목 받았으나 주연보다는 묵직한 조연에 머물렀던 이들은 최근 케이블 드라마를 만나 십 수년 연기생활의 ‘포텐’(Potential의 준말로 잠재력을 뜻함)을 제대로 터뜨리고 있다.
‘미생’과 ‘시그널’ 등 tvN 드라마 속 이들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반가운 건 수십 편의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두루 거치며 묵묵히 쌓아 올린 내공이 빛을 발해서다.
조진웅은 여심을 자극하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1년 출연했던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속 세종의 우직한 호위무사 무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기 시작한 그는 이후 작품에서도 대부분 묵직한 톤의 의리파이자 상남자를 연기해왔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여성 시청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가 연기한 강력계 형사 이재한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후배 차수현(김혜수)에게 단 한번도 남자의 언어를 건네본 적이 없다. “이 새끼가” “정신 안 차려?” 등의 날카롭고 까칠한 형사의 언어만이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런데도 이를 지켜보는 여성 시청자들은 뛰는 심장을 움켜잡는다. 살인마에게 납치됐다 극적으로 살아난 수현을 끌어안고 “선배가 너무 늦었다”며 투박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쓸어 내리거나 “커피나 타고, 네가 다방 레지냐” “또 그렇게 눈 예쁘게 뜬다”며 윽박지르는 그의 사내다움에 여성들의 입 꼬리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고야 만다. 멜로드라마가 아닌 장르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랄까.
이성민은 2014년 tvN ‘미생’을 통해 만개했다. 시그널까지 단 3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조진웅과 달리 이성민은 수십 편의 지상파 드라마에 얼굴을 비쳤다. 그러나 대부분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 코믹한 감초(MBC ‘파스타’ 등)거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젊은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을 보완하는 역할(MBC ‘골든타임’ 등)을 주로 맡았다.
그러다 미생에서 지독한 워커홀릭이자 미래가 불투명한 인턴사원 장그래의 멘토 오상식 차장 역을 맡아 직장인들 사이 미생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 앞장섰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조진웅의 바통을 이어 받는다. 이성민은 ‘시그널’ 후속으로 오는 18일 첫 방송하는 ‘기억’으로 2년 만에 케이블 드라마 신화를 다시 한번 써 내려가겠다는 각오다. 출세 지향적인 냉철한 변호사로 최고 전성기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박태석 역으로 특유의 가슴 먹먹한 내면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기억’의 연출을 맡은 박찬홍 감독은 “무게감 있는 연기력이 가장 중요한 이 드라마에서 태석 역은 이성민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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