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의 낙원, 축칠란-이신리비 트레킹
※킬로토아 트레일1(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킬로토아-축칠란 트레킹)에서 이어짐.
오전 7시, 허기에 잠을 깼다. 밤새 칼로리를 소진한 모양이었다.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았다. 아니 이것은! 잠이 확 달아났다. 달걀을 관대하게 푼 바나나 오믈렛과 촉촉하게 잘 삶은 달걀, 갓 따온 생과일과 사르르 녹는 빵이렷다! 킬로토아 루프의 진정한 미는 고된 트레킹의 후에 맛보는 풍성한 음식에 있다. 호스텔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강행해야 하는 트레커를 이렇게 독려하고 있었다. 물론 땀으로 찌든 어제의 몸이 높은 해발고도의 청량한 공기에도 씻기진 않았다.
이신리비행 트레일의 시작은 대체로 평화였다. 민낯을 드러낸 잿빛 절벽과 녹색 지붕 같은 비옥한 밭, 예술작품 같은 기암괴석을 마주하다가 꼬불꼬불 현지인 집을 살갑게 지나치는 평지. 무엇보다 맑은 하늘이 만점이었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호스텔에서 주워 들은 코스 설명과 지도도 있었다. 어제와 같은 ‘뻘짓’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걸음을 재촉해 앞서 가는 인디오 부부와 속도를 맞췄다. 누군가와 좋아하는 길을 함께 걷는다는 건, 서로의 마음에 연결고리를 거는 것. 케추아어를 사용하는 그들과 대화가 통할 린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느 별에서 왔는지, 동양인에게 깊은 호기심을 보이는 시선이었다.
때론 사하라 사막 같고, 때론 아마존 같아 전혀 색다른 행성 느낌을 주던 트레킹은 슬슬 불안 증세를 띠기 시작했다. 지도는 곧 산 아랫마을로 진입하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쳐온 길의 어디쯤에서 내려가야 했을까? 넋을 잃은 할머니에게 물으니, 낫을 과감히 휘두르며 친히 나섰다. “여기로 가면 돼.” “여기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트레일이 종적을 감춘, 풀과 갈대로 뒤덮인 어느 바위 언덕이었다.
회오리 바람이 얼굴을 가격했다. 가자미 눈으로 아랫마을을 곁눈질하랴, 고불고불 길을 뚫으랴, 정신 없이 내려갔다. 신비롭게도 마을은 태풍의 눈이었다. 풀밭에 드러누워 낮잠이나 한숨 잤으면 하는 그런 마을이다. 이제 마을을 등지고 곧 보일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가수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을 감사해 하겠지, 그를 믿었다.
황홀했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키 높은 편백나무 잎사귀의 움직임이 바람에 실려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귀를 가득 채웠다. 걷기에 따라 길의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매끈한 돌 사이를 뒤뚱뒤뚱 걷다가 들판으로 쑥 들어가 날아드는 나비와 산책하다가, 팔을 뻗어 들풀을 만지며 눈을 감고 거닐기도 했다.
행복 모드는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달라졌다. 트레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눕혀진 풀의 각도를 따져가며 길을 찾기 위해 셜록 홈스로 발돋움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에 ‘진심으로’ 물었지만, 역시 답은 없었다. 험한 고갯길이 있을 거란 설명도 없었고 애초에 그리 친절한 지도도 아니었으니. 무작정 눈앞에 옅게 보이는 트레일의 정상에 올랐다. 숨이 꼴까닥,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걸어야 하는 고갯길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들판이 나오고, 트레킹은 잠시 휴식 상태에 돌입했다. 이 산이 아닌가 봐… 나폴레옹의 재림이었다.
점심을 해결하는 사이, 탕탕은 먼발치에서 트레일을 발견했다. 그곳까지 서스펜스 트레킹이 시작됐다. 어제처럼 사유지를 불법 침입해야 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급 하산하고, 철조망 아래로 기어 넘고, 진흙탕에 시원하게 빠졌다. 우리와 너, 대략 애증의 관계. 킬로토아 루프는 우릴 단단히 훈련시키고 있었다.
제대로 된 트레일이 시작되었다. 끝이 시작일 수 있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참 고마운(!) 킬로토아 루프였다. 지도는 이제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어찌 이토록 잔인하게 친절하지 않은 안내가 있을 수 있는가.
‘왼쪽에 농장이 보이고, 여기서 오른쪽 길을 택하면 돼.’
뭐라? 전부 농장인데! 네가 말하는 그 농장이 이것이더냐!!! 지도에 그린 집도 실제론 온 사방에 수채가 있었다. 또 한 번 먼발치를 봤다. 이신리비 같아 보이는(!) 마을이 보였다. 물론 그 마을일진 알 수 없다. 하나 때론 알 수 없음에도 가야 하는 길이 있는 법. 일단 걸었다. 도중에 만난 말을 끄는 한 사내의 말이 우리를 안심시켰다..
“이신리비? 여기 올라 1시간!”
경험으로 봐서 2시간이 소요될 거란 의미로 즉각 알아들었다.
다시 다리가 후들거리는 길이 시작됐다. 아니 암벽 등반 수준이었다. 이런 트레킹을 계속하면 나라도 구할 수 있겠구만! 그리고 나온 또 두 갈래의 길. 종이쪼가리(지도라 하지 않겠다)가 얼마나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알았다. 절대 여기로는 내려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곳이 어딘지 모른다.
어제보다 더 많은 장애물이 매복하고 있었다. 없어지다 못해 현지인의 집으로 연결되는 가느다란 길이 우릴 혼란스럽게 했다. 객기를 부려 따라가 봤으나 지름길일 거란 예상과 달리 막다른 골목이었다. 다시 풀밭을 헤치고 같은 시작점으로 돌아오길 수 차례, 안구에 습기가 차올랐다(농담이 아니라 정녕 이 말뜻을 이해하게 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제 그만 돌아갈래~”
남은 선택은 단 한가지. 이곳에서 이신리비에 가려면, 지금 있는 산을 내려가 강 하나를 더 건너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쩐다. 배낭에 있던 모든 주전부리와 물까지 소진한 상태, 우리의 몸은 방전된 상태였다. 그때였다. 조급한 마음을 땅에 내려두고 산의 정기를 들이마셨을 때, 풍경이 징그럽게 아름답다고 한 그 순간. 동서남북으로 시선을 뺐던 산 정상에서 거짓말처럼 다리 하나가 내려다 보였다. 그곳으로부터 이어진 마을, 왠지 이신리비일 것 같았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요’라는 킬로토아 트레일의 지침대로 그 다리만 보고 하산했다. 돌부리를 잡고 기어가듯 내려가니, 트레일임이 분명한 큰길과 조우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었다. 물론 위생상태가 점검되지 않았으나 배 아픈 것보다 목마른 것이 더 위기로 다가온 상태였다. 탕탕의 지혜를 전수받아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강물을 빈 페트병에 가득 담았다. 살 것 같았다.
멀리 그림처럼 보였던 호스텔이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목적지와 거리가 점점 줄어들수록 쾌감은 커지고 트레일에 품었던 증오도 천천히 씻겼다. 땀띠 날 정도로 샤워한 뒤 어제처럼 큰 테이블에서 동서양의 여행자와 마주했다. 각자 얼마나 길을 잃었는지에 대한 ‘수다 배틀’이 붙었다. 지도 제작자가 A4 용지에 얼마나 몹쓸 ‘언어 유기죄’를 저질렀는지, 악담도 퍼부으면서.
“그래도 좋았지? 응, 매우 좋았어.”
여행자가 하나 둘 자리를 비운 사이, 화덕에서 타는 장작을 보며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 아등바등 살아도 답이 없는 인생에 시원하게 따귀를 맞았다고나 할까? 고생해봤자 잇속은 남이 챙긴다는 핑계로 쉬운 길을 택한 인생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고생 끝엔 분명히 낙이 온다는 것, 내가 한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을 준다는 것. 어쩌면 끊임없이 산을 오르는 자는 트레킹이 주는 이런 진리에 매료됐는지도 모르겠다. 눈은 호강했고, 그만큼 육체의 노동이 있었다. 킬로토아 트레일에서 그간 부정해왔던 세상사의 진실을 배웠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이었다.
여행의 선물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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