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무대 말고 객석서만 춤 춰라? 이상한 클럽 규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무대 말고 객석서만 춤 춰라? 이상한 클럽 규제

입력
2016.03.07 04:40
0 0

일반음식점 舞蹈행위 전면 금지에

마포ㆍ서대문구 조례로 일부 허용

앉은뱅이클럽 전락…상인들 울분

소방시설 강화 비용만 1600만원

소형업소 죽이는 탁상행정 비판도

홍대 앞 라이브클럽. 한국일보 자료사진
홍대 앞 라이브클럽.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홍대클럽거리는 3월부터 슬슬 성수기에 돌입한다. 인근 대학 개강 시즌에 봄으로 가는 길목이라 클럽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다. 지난 4일에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맞은 청춘들은 음악에 몸을 맡길 곳을 찾아 홍대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지난달 19일부터 발효된 마포구의 ‘홍대 클럽 합법화’ 조례 때문이다. 조례 이름만 보면 클럽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마음 놓고 장사를 하게 됐다는 뜻. 그런데 ‘무대가 아니라 객석에서 춤을 춰야 한다. 소방설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발이 묶여 ‘앉은뱅이 클럽’으로 전락하거나 문을 닫게 됐다는 불만이 커졌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홍대, 신촌 앞 클럽거리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반음식점 춤 규제로 논란 2년 반

이야기는 2013년 9월 ‘밤과음악사이’ 건국대점 고발 송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할 구청은 식품위생법 상 업태 위반 이유로 일반음식점이었던 이 주점의 무대 철거 명령을 내렸으나 주점 측은 소송을 불사해 논란이 커졌다.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8월 춤 추는 무도(舞蹈) 행위 관련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 지난달부터 ‘일반음식점 영업자가 음향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춤을 추게 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홍대 상권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해당 구역이 주거지역이라 일반음식점으로 영업해야 하는 홍대 앞 클럽 대부분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결국 마포구는 지난해 9월 유흥주점에 준하는 소방안전 시설을 갖춘 곳에 한해 ‘춤 업소’를 허용키로 했다. 마포구에 이어 서대문구의회도 오는 18일 임시회의에서 일반음식점 안전기준 등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영세 클럽 ‘소방시설 비용 없어’ 눈물

클럽 업주와 이용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자체가 마련한 조례에는 ‘탁자와 의자 등을 설치한 곳, 탁자와 탁자 사이의 이동 통로에서만 몸을 흔들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흥에 겨워 스테이지 위로 올라가는 등 흔히 클럽 하면 떠오르는 모든 행위가 금지되는 셈이다. 한 클럽 이용자는 “통로에서 춤 추는 건 괜찮고 멀리 떨어진 앞쪽은 안 된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 식 규제”라고 지적했다.

‘유흥주점에 준하는 소방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조례 내용도 상인들에겐 부담이다. 조례 유예 기간인 5월까지 스프링클러와 물탱크 등 소방시설을 갖춰야 하나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는 홍대 앞 영세 클럽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홍대에서 22년간 명맥을 이어온 클럽 명월관의 김은희 대표는 6일 “조례가 제시한 안전 시설을 전부 구비하려면 1,600만원이 필요한데 비용이 부족해 이달 중 기부금을 걷는 파티를 두 차례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여건이 되는 주점들도 무대 자리에 테이블을 끼워 넣으며 흔적을 지우는 궁여지책만 준비 중이다. 신촌의 한 주점 관계자도 “다급한 마음에 서대문구도 마포구 조례를 벤치마킹했지만 독소 조항을 그대로 베껴 온 모양새가 돼 다른 대안을 궁리 중”이라고 말했다.

‘춤의 자유 허하라’ 갈등 여전

정부와 지자체 입장은 완강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애초에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행위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일반음식점과 달리 유흥주점에 비싼 세금을 부과해 허가를 내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종의 특혜를 만들어준 만큼 클럽들도 최소한의 안전 기준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인들은 클럽을 옥죄는 규제가 현실을 무시한 당국의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임천재 신촌상권살리기 대표는 “지자체의 요구는 사정이 넉넉한 대형 클럽들만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대학 상권을 살리겠다고 하는 법이 되려 가난한 학생들의 놀이 문화를 억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젊음의 메카 홍대와 신촌에서 ‘젊은이들에게 춤을 허하라’는 저항운동이 터질 참이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