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전 대통령이 쓰고 있던 ‘도덕적 정치인’이란 가면이 마침내 벗겨졌다.”
지난 4일(현지시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 브라질 전 대통령이 비리 스캔들로 자택에서 경찰에 연행되자 브라질 일간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는 이같이 논평했다. 브라질 시민들은 그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의 벽에 “룰라는 부정부패로 가득 찬 도둑이었다. 그의 시대는 끝났다” 고 페인트칠 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69) 대통령도 비리에 연루돼 탄핵될 처지에 놓이며, 두 전ㆍ현직 대통령이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재임(2002~2010년) 기간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와 건설업체로부터 고급 자택을 무료로 리모델링 받고, 이 회사의 임원 인사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사업권을 따내려는 대형 건설사들로부터 3,000만 헤알(약 95억원)의 뇌물을 받아 여당인 노동자당 선거운동에 전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룰라는 결백을 호소했다. 그는 약 4시간에 가까운 경찰 조사 후 공개연설에서 “경찰이 나를 강제 구인한 것은 정치적인 쇼”라며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아 두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정직하면 내가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은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다. 브라질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에 따르면 비리 의혹이 불거진 후 71%에 달했던 룰라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37%까지 떨어졌다. 2018년 대선 출마 예상 득표율에서도 22%에 그쳐 야권 유력 후보에 10%포인트 뒤졌다.
페트로브라스 비리 연루 의혹을 받는 호세프 대통령도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2일에는 룰라와 호세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 캠페인을 담당했던 주앙 산타나가 300만달러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앞서 페트로브라스 비리 혐의로 구속된 노동자당의 델시디오 아마랄 상원의원이 플리바겐(감형을 조건으로 한 혐의 인정)으로 호세프 대통령의 부패를 검찰에 진술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제1야당인 브라질사회민주당은 집요하게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 상황도 호세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3.8%가 하락해 1981년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6년째 상승한 실업률은 2015년 7.9%로 정점을 찍었다. 원유 수출이 주요 수입원인 브라질은 국제 유가 폭락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호세프 대통령이 지지층을 유지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거부하면서 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룰라 전 대통령이 경찰에 체포돼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커지자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치솟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위기에 처한 전ㆍ현직 대통령은 5일 룰라 대통령의 자택에서 만나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당은 연일 계속되는 정치적 타격을 벗어나기 위해 다음 대선에 룰라를 다시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외신들은 “경찰이 룰라를 소환한 것은 부패에 대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잡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며 “박해 받는 이미지가 견고해지면 정치적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도 분석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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