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운영하는 문학 레지던스 공간에서 겨울을 난 적 있다. 나무가 울창한 곳이었다. 눈 내리는 풍경이 아름다웠고 맑은 날엔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빛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위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뭔가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한 소설가는 여유가 넘쳤는지 빼곡히 들어찬 나무의 개수를 일일이 세기도 했다나. 아무튼 따뜻하고 차분한 겨울이었다. 그러다가 2월 중순이 넘어가며 갑자기 몸에 탈이 났다. 잠을 잘 수 없었고, 온몸에 피가 마르는 것처럼 사지가 뻣뻣해졌다. 갈증이 심했고 음식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병원에 가 봐도 별 이상은 없었다. 미세한 환각과 환청을 느낄 때가 많았다. 주변 사람에게 얘기했더니 거기 귀신이 살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농담이었지만, 왠지 진짜 그럴 거 같았다. 그렇게 3월이 되며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어느 낮이었다. 볕 바라기 할 겸 정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문득, 사위를 둘러 싼 나무들의 기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겨우내 입 다물고 있던 나무들이 일제히 지껄이는 말소리를 듣는 기분. 나무들이 내 안의 수분을 빨아 마셔 내 몸이 허해진 거 아닌가 싶었다. 내 몸이 먹이가 되어 봄의 나무들을 생동케 하는 거라 생각하니 아픔이 되레 따듯하게 여겨졌다. 그 해 3월 말, 그곳을 나왔다. 몸이 거짓말처럼 건강해졌다. 그 후로 나무를 오래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