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첫 해트트릭을 작렬한 구자철(27ㆍ아우크스부르크)의 영광 뒤에는 팀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녹아있었다.
구자철은 5일(한국시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WWK아레나에서 열린 레버쿠젠과 분데스리가 25라운드 홈경기에서 혼자 3골을 뽑아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2007년 K리그 클래식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데뷔를 한 뒤 첫 해트트릭. 한국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건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24ㆍ레버쿠젠 시절이던 2013년 11월과 2015년 2월)에 이어 두 번째다. 분데스리가에서 10년을 뛰며 정규리그 98골을 넣은 ‘전설’ 차범근(63) 전 수원 삼성 감독도 해트트릭을 한 적은 없다. 구자철은 시즌 시즌 7호 골로 지난해 자신의 한 시즌 최다 득점과도 타이를 이뤘다. 작년에는 정규리그 5골, 컵 대회 2골이었고 올 시즌은 정규리만 7골이니 순도가 더 높다. 아우크스부르크가 9경기를 남겨놓고 있어 구자철이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첫 두 자릿수 득점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구자철의 해트트릭에도 팀은 웃지 못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3-0으로 앞서다가 후반 15분 한 골을 허용한 뒤 후반 막판과 추가시간에 잇따라 실점해 3-3으로 비겼다. 구자철은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마지막 몇 분은 우리에게 재앙과 같았다”며 “내 기록보다 중요한 건 팀 승리다. 이기지 못해 부끄럽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팀 승리가 날아간 건 아쉽지만 구자철은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다. 그가 이날 날린 4개의 슈팅이 모두 골대로 향한 유효슈팅이었고 이 중 3개가 득점으로 연결됐다. 이날 활약은 포지션 변화와도 관계가 깊다. 사실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가장 선호한다. 그는 K리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공격형으로 변신한 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득점왕(5골)을 거머쥐었고 이 활약을 발판 삼아 독일로 진출했다. 이후 득점 감각을 키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원래 헤딩을 싫어했지만 유럽에서 성공하려면 헤딩이 필수 능력이라는 걸 알고는 꾸준히 반복 훈련을 해서 지금은 상대 골키퍼가 구자철의 머리를 겨냥해 골 킥을 할 정도로 향상됐다.
하지만 올 시즌 그는 공격형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뛰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중앙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잇달아 부상당하자 마르쿠스 바인지를(42) 감독이 구자철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이날 레버쿠젠을 상대로는 다니엘 바이어(32)가 부상에서 복귀해 구자철이 오랜만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할 수 있었고 그는 해트트릭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구자철은 지난 달 21일 하노버 원정에서 40여 m를 드리블한 뒤 감각적인 오른발 슛으로 인상 깊은 득점을 터뜨렸는데 그날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한 마디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면 득점이 터져주는데 팀 사정상 수비형을 보며 희생하고 있는 셈이다. 구자철 측근은 “공격형을 보면 아무래도 골 기회가 많이 온다. 하지만 팀을 위해 수비에 중점을 두고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구자철의 득점이 뜸할 때 국내 팬들이나 언론은 별 활약이 없는 것처럼 여겼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다른 선수 같으면 불평을 할 법도 한데 구자철은 팀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서든 뛰겠다는 마음이다”고 전했다.
해트트릭은 투혼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구자철은 작년 12월 종아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생각보다 빨리 낫지 않자 지난 1월에는 한국에 있던 재활 트레이너에게 도움을 청해 그가 독일로 직접 날아와 약 1주일 간 부상 부위를 치료하기도 했다. 이런 자기관리 덕에 부상이 호전돼 경기는 뛰고 있지만 아직 통증은 남아있다. 이 측근은 “지금 팀이 강등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 구자철이 꼭 필요하다. 그걸 선수 본인도 잘 알아 참고 견디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우쿠스부르크는 현재 14위(승점 26)로 강등권인 16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승점 24)와 승점 차가 2에 불과하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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