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상실은 쉽게 잊혀지지 않지요. 애도는 치유를 위한 노동 행위입니다. 그 노동을 견뎌야 상실감에서 벗어나 다시 사랑할 수 있어요. 오늘 이 자리도 그 노동의 일환입니다.”
지난 3일 서울 논현동 콜라보서점 북티크에서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상 편집부문 수상작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진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외에도 르포작가 김순천씨가 타고 있었다. 수백의 생명이 눈 앞에서 수장되는 경악할 사건에 김씨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생업을 뒤로 하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주던 인권운동가, 대학생, 작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참사 직후부터 그 해 12월까지 희생 학생 부모 13인을 인터뷰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그 육성 모음집이다. 오열과 한숨, 애끓는 그리움이 담긴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고, 2년여 100차례 이상의 크고 작은 독서 모임으로 이어졌다.
이날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란 제목으로 열린 북콘서트에는 단원고 학생 호성이 엄마 정부자씨와 예진이 엄마 박유신씨를 비롯해 30여명이 함께 했다. 사회자로 나선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상임활동가는 1부에서 유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2부에선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들과 함께 한 황필규 변호사와 대담했다.
엄마들은 방금 전까지 자식을 보고 온 사람처럼 밝게 얘기를 시작했다. “여기 올 때 전철을 타고 왔는데 우리 예진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예진이가 뮤지컬 배우 하겠다고 자주 전철 타고 대학로 왔다갔다 했거든요. 같이 가자고 많이 졸랐는데 피곤하다고 늘 나중에, 나중에 했어요. 평생 못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래도 지하철 타면서 우리 예진이 생각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박유신씨는 딸 예진이가 의리 있는 아이라고 자랑했다. “놀러 온 친구들이 집에 갈 때가 되면 위험하다고 한 명 한 명 데려다 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야, 네 외모 너무 믿지마’ 했어요(웃음). 주말에 양로원 가서 봉사할 때도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왔는지 ‘할머니, 너무 고우세요’ 이래요. 부족한 엄마한테서 태어났지만 예진인 저한테 너무 완벽한 딸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기 가득했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 들었다. 호성이 엄마 정부자씨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참사 후 호성이 아빠는 직장을 그만뒀다. 컴퓨터 앞에 모여 농담하는 동료들 사이에 있는 게 힘들어 퇴사했지만 다시 구직하는 게 쉽지 않아 요즘엔 TV 앞에만 있다.
“(남편은)가정이 파괴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저대로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혀 하루 종일 밖으로 돌아다녀요. 호성이에게 형이 있는데 저한테 대놓고 말해요. 현명하게 사시라고. 그렇게 돌아다니다 건강 잘 못되면 그걸 누가 책임지겠냐고, 국가는 절대 책임 안 진다고.” 최근엔 호성이 앞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으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유가족들이 일상에서 겪는 상처는 이렇게 예기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다른 엄마 아빠들 중엔 집에 틀어박혀 안 나오는 사람들 많아요. 내가 내 새끼 하나 못 지켰구나. 사실은 국가가 못 지킨 건데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가 거꾸로 손가락질을 해요. ‘당신네들이 못 지키고 왜 국가한테 자꾸 뭘 해달래’. 그래서 스스로 계속 물어요. 우린 진짜 자식 새끼 죽인 부모들인가? 우리가 이 땅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황필규 변호사와의 대담에선 최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안이 여당의 외면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과 유가족 배보상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 오갔다. 황씨는 지난해 말 해경이 부실구조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 받은 것에 대해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해경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국가의 법적 책임이 확인됐습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대법원이 판결하는 즉시 대통령이 나와 유가족들에게 석고대죄하는 게 맞습니다. 사과는커녕 아무 언급도 없던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 여부 문제도 거론됐다. “정부의 태도는 (유가족들이)불쌍하니까 아니면 아직 힘이 있는 것 같으니까 좀 들어줘야겠다는 식이에요. 낙인을 찍는 거죠. 한 맺힌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그렇게 자기 눈과 귀를 막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은 국민들을 향해 끝까지 함께 해주길 당부했다. “딱 2년 전 만큼만 모여줬으면 좋겠어요. 전 그때 정말 대한민국 바뀌는 줄 알았어요. 지금 삶에 안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땅이 될까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나서주면 좋겠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소리 한 번 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정부자)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는 9일 오후 7시 30분 같은 장소에서 교양부문 수상작 ‘노동여지도’(알마 발행) 저자 박점규씨와 독자의 대화로 이어진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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