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끊이지 않는 비판 중 하나가 바로 ‘불통’이다. 거론되는 여러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하지만,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 중 상당수도 “주변에 적극적으로 ‘No’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베이징 교민사회에선 박근혜 정부 들어 역대 최고라던 한중관계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를 두고 적잖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중관계가 사드 논란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까지 사드 논란이 어떻게 결론날지, 이후 한중관계가 어떻게 될 지를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대중 외교의 최일선에 있는 이들이 요즘 좌불안석이라는 점이다.
교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바의 상당 부분은 4월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국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발하는 사드 배치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두고서다. 외교가에선 아주 조심스럽게 “대통령이 직접 할 얘기는 아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사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은 “4월 총선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한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려온 박 대통령이 던진 정치적 승부수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사드의 민감성이다. 외교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 부분이다. 외교안보라인 핵심인사들이 박 대통령에게 사드 관련 발언 이후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는지 모르겠다는 게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 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수위가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와 함께.
미국과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두고 막판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드 문제가 주요한 협상카드로 부상한 점도 이들을 한숨짓게 만드는 듯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가 상대방을 견제하거나 상호 협력할 카드가 많은 반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대중 지렛대가 크지 않은데도 ‘과하게’ 한 발을 내딛은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유엔 결의안 채택 이후 미국이 “사드 문제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를 ‘외교적 수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중국이 제안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논의의 병행추진에 대해 미국 측에서 긍정적인 사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결국 사드 논란이 미국의 대중 지렛대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참모진이나 새누리당의 친박계 인사들을 진박이니 월박이니 탈박이니 복박이니 하며 분류하곤 한다. 여기엔 비판적인 시각을 넘어 비아냥의 어조가 깔려 있다. 아무리 친박핵심이더라도 박 대통령과 직접 대면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정설이고 보면 ‘레이저에 한번 맞고 나면 아웃’이란 농반진반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장관들은 물론이고 수석비서관들조차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김장수 주중대사가 비록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냈지만, 사드 문제와 관련해 뭔가 의견을 제시했을 거라고 보는 이들이 거의 없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드 문제에서 주도권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공개적으로 계획 철회까지 요구한 건 상궤를 벗어난 지극히 무례하고 이기적인 일이다. 하지만 사드 논의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정부와 민간을 포함한 대중외교의 현장에서 박 대통령의 불통 얘기가 회자되는 건 그래서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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