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보안시스템 도입 일자리 잃어
주민대책위, 생계 돕는 방안도 강구
“해고 당일 업무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더군요. 돈이 문젠가요? 우릴 믿어주는 주민들을 위해 계속 일하기로 결심했죠.”
지난 7년 동안 서울 강서구 가양동 D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최모(71)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최종 해고 통보를 받고서도 나흘 째 아파트를 지키고 있다. 4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최씨는 “평소대로 새벽 5시30분에 출근해 15층부터 1층까지 걸어 내려오며 순찰을 돌았다”며 “주민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한 이곳을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비원 박모(70)씨도 이날 오전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서는 주민들을 배웅했다. 박씨는 “출근하는 주민들 뒷모습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적법한 절차 없이 경비원을 모두 해고한 일부 주민이 미워 얼른 떠나버리려 했지만 우리를 지지해주는 많은 이웃들까지 등질 수 없었다”고 했다.
두 사람처럼 인건비 절감과 무인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을 이유로 해고 당한 이 아파트 경비원 44명은 여전히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있다. 해고에 반대하는 대책위원회 소속 주민 수십명도 아파트 정문 앞에서 일주일 째 천막 농성 중이다. 새로 경비를 맡게 된 업체가 아파트에 진입해 경비원들을 몰아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D아파트에서 23년 간 살아 온 김모(64)씨는 “그깟 몇 푼 아끼자고 10년 넘게 얼굴을 맞댔던 경비원들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소속이 없는 해고 경비원들의 생계를 돕는 대책도 강구하고 있다. 대책위 소속 김승현 노무사는 “경비원들이 해고됐더라도 업무를 한 사람들과 그로부터 서비스를 받은 주민들의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근로비를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3월치 관리비 중 경비원 고용 몫을 따로 모아 직접 주거나 기존 관리업체와 협의해 지급하는 등 여러 대안을 논의 중이다. 대책위는 일방적으로 통합보안시스템 도입을 추진한 아파트 회장 해임을 묻는 주민투표도 5일 실시하기로 했다.
D아파트의 관리업체로 선정돼 1일부터 업무가 예정됐던 A사는 법원의 가처분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주민들은 지난달 15일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결의한 통합보안시스템 설치를 무효로 해달라며 회장 김모(61)씨 등을 상대로 서울 남부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업체 관계자는 “주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원치 않기 때문에 가처분 소송 결과를 보고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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