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일이나 걸린 안보리 제재
사드가 촉발시킨 공조 혼란
한미가 아닌 한반도 우선돼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무려 57일만이다. 과거 세 차례 핵실험에서 길어야 3주 이내에 결의안이 채택된 것과는 다른 결과다. 북한이 수소폭탄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라고 앞다퉈 비분강개한 데 비추면 쓴웃음이 나온다. 북한을 혼내야 한다면서도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행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게 이번 안보리 정국이 아니었던가 싶다.
강력한 제재라는 소기의 성과는 얻었다. 북한의 주력 외화벌이 품목인 광물자원 수출이 처음 금지됐고, 군부로 유입되는 항공유의 판매?공급도 처음으로 제재대상에 올랐다. 북한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에 대한 검색을 의무화한 것도 큰 성과다. 그러나 제재조율 과정에서 우리가 감내해야 했던 유?무형의 안보전략적 손실이 적지 않았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의안 초안 회람 최종 단계에서 러시아의 몽니로 또 한번 빛이 바랬지만, 한미일과 북중러가 제재 수위를 놓고 대립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비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단순히 결의안 문구 조율 차원을 넘어서는 큰 문제다. 사태의 원인이 북한의 핵실험이고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던 목소리가 두 달 가까이 자중지란을 겪어야 했던 이유를 이제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논란이 대오를 흐트러뜨린 주된 원인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청?협의?결정이 없었다는 ‘3No’를 힘겹게 지켜가던 정부가 북한 핵도발 대응수단으로 돌연 사드를 꺼내든 게 첫 번째 단견이다. 사드가 효율적 대북미사일 방어수단인지는 둘째 치고, 이를 중국의 대북공조 유인수단으로 가볍게 여긴 것 자체가 어떤 변명도 쉽지 않은 패착(敗着)이었다.
미중 간에 사드가 갖는 전략적 함의를 모르지 않을 당국이 북핵 정국에서 이를 들고 나온 배경은 두 가지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절대적 맹신이 하나고, 동북아의 지정학적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북한을 힘으로 무너뜨리겠다는 고집이 또 하나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안 협의 과정에서 드러났듯, 한미동맹이 사드 배치의 최우선적 가치가 아님이 분명해졌고, 이는 미국을 등에 업은 고강도 대북 무력대응이 고집으로만 되는 게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장 사드를 배치할 것처럼 하다가 가능성 차원의 협의라고 뒤로 빼더니, 다시 또 정체불명의 실무협의를 하겠다고 나서는 미국의 놀음에 정부가 무기력하게 휘둘리는 원인은 단 하나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착각, 근시안적 사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선제조치라고 평가하는 개성공단 가동중단은 헛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강력한 제제를 요구하면서 우리 스스로 뒷문을 열어놓을 수 없다는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이 결단이 강력한 대북제재를 이끌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입만 떼면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안정 수호, 대화?협상 통한 문제해결’을 떠드는 중국이 우리가 개성공단 결단을 내렸다고 해서 자신의 한반도 원칙을 버리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왜 이제 와서’라는, 동기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모순적 행동이 두드러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강력한 안보리 제재를 도출하지 않았느냐고 자위할지 모르나 이는 사드를 놓고 미중이 벌인 타협의 산물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앞으로의 대북 대응양상이 국제사회의 질서유지라는 정의론적 차원이 아닌 미중 간 패권다툼 차원에서 전개될 것임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탄이다. 남북이 문제해결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다. 중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의 군사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힘의 외교로는 한반도에서의 미중의 갈등을 조정할 수도, 북한에 대한 끝판제재도 기대할 수 없다. 5차, 6차 핵실험을 막을 근본적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