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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아카데미가 한국 영화상에 던진 교훈

입력
2016.03.0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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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열린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의 배우들이 수상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열린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의 배우들이 수상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3,430만명.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열린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을 지켜본 미국 시청자 수입니다. 미국인 10명 중 1명 정도가 TV로 시상식을 봤으니 꽤 성공적이라 할 수 있으나 아카데미로서는 반길 수 없는 수치입니다. 3,200만명이 시청했던 2008년 이후 가장 적고, 역대 세 번째로 적은 시청자 수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청자 수는 3,660만명이었습니다. 미국 보도채널 CNN은 “아카데미 후보들의 인종적 다양성 부족에 따른 비판과 항의 때문”이라고 지난 29일 보도했습니다. 유색인종은 한 명도 주요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백인만의 잔치라는 뭇매를 맞으면서 시상식이 큰 재미를 못 보았다는 것이지요.

인종 논란 때문에 시상식 전부터 도마에 올랐던 아카데미이지만 한국영화, 특히 영화상 주관단체에 던지는 교훈은 만만치 않습니다. 아카데미는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적어도 수용하고 고치려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흑인 배우 크리스 록이 시상식 시작부터 “내가 사회자가 아니었다면 이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백인 위주의 아카데미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마션’과 ‘조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 주요 후보작들을 패러디한 영상에는 록과 우피 골드버그 등 흑인배우들이 시종 등장했습니다. 아시아계 어린이들을 무대에 올리고, 후보작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거리에서 들을 때도 모두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13년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장으로 선출된 셰릴 분 아이작스도 무대에 올랐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AMPAS 회장이 시상식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백인만의 아카데미라는 비판을 서둘러 진화하고 싶은 아이작스 회장의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아이작스 회장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아카데미가 아직은 백인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그는 “그건 다 옛말”이라며 남일이라도 되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덴젤 워싱턴과 핼리 베리 등 흑인배우들이 배우상을 받고, 흑인 감독 스티브 매퀸이 작품상을 받는 등 아카데미의 인종적 편견이 사라졌다는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올해 급습 당하듯 흑인 배제 논란이 벌어졌으니 많이 당황했을 만도 합니다.

비판이 쏟아지자 납작 엎드린 자세로 겉으로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카데미는 지난해 국내 대종상영화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행사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불참자 수상 불가’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시상식에 오지 않는 배우나 영화인은 수상자에서 배제하겠다는 발언이었습니다. 국민적 축제인데 대리 수상은 영화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영화제가 배우 출석 부르는 곳이냐’는 비아냥과 함께 ‘영화제가 권위가 없으니 이상한 방식으로 권위를 세우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언론들이 이상한 시상 기준이라고 비판 기사를 잇달아 내놓았으나 대종상조직위원회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여러 배우들이 집단으로 참석 불가를 선언하면서 행사는 엉망이 됐습니다. 대종상조직위원회의 고집 아닌 아집은 대종상에 ‘대충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안겨줬습니다.

아카데미의 수상 결과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입니다. 탐사보도를 통해 미국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을 들춰낸 기자들의 활약상을 조밀한 이야기로 전하는 영화입니다. 저널리즘이 죽어간다는 시대에, 저널리즘의 가치를 재조명한 작품입니다. 미국 흥행집계전문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4일 기준 지난 1년 동안 미국 흥행 순위를 따지면 ‘스포트라이트’는 고작 65위에 머물렀습니다. 관객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은 작품은 아닙니다. 아카데미는 대중성보다는 완성도 높고 사회성 짙은 영화에 최고 영예를 안겨준 셈입니다.

올해뿐만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독립영화 성격이 강한 ‘버드맨’에, 2014년에는 19세기 미국 노예제도를 고발한 ‘노예 12년’에 작품상을 주었습니다. 거의 매년 상업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그 해 가장 빼어난 작품에 최고상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상들은 다릅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과 그 영화의 출연배우들이 주요상 후보에 오르고, 상을 독차지합니다. 지난해 대종상은 1,426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국제시장’에 작품상과 감독상, 시나리오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10개 부문 상을 안겼습니다. 흥행작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시장’의 10개 부문 수상은 지나친 처사라는 게 영화계의 보편적인 인식입니다. ‘국제시장’보다 흥행은 많이 못했어도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가 더 많다는 것이지요. 올해 아카데미가 여러 비판을 받으며 시청자 수도 크게 줄었다고 하나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듯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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