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웅성임
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장윤성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308쪽ㆍ1만5,000원
끝이 없는 위기
헬렌 캘디콧 엮음, 우상규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204쪽ㆍ1만2,000원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서경식 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발행ㆍ360쪽ㆍ1만6,000원
어떤 압도적 재앙은 소리마저 삼킨다. 동일본대지진이 그렇다. 사자(死者)들은 말이 없다. 산 자들은 압도적 비참의 무게에 눌려 입을 닫았다. 찰나에 피붙이와 생사가 갈린 유족도, 쓰나미에 휩쓸려 건물더미 사이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떨던 밤 들려왔던 “살려주세요” 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생존자도, 피폭 건물 재해가 끝도 없이 쌓인 고향에 돌아갈 기약이 없는 이도 모두 눈과 입을 질끈 감았다. 이 아픔에 결코 온전히 가 닿을 수 없는 외부인들의 위로는 “감히” 또는 “차마” 발화되지 못했다.
‘죽은 자들의 웅성임’은 대지진, 쓰나미, 원전폭발 등 동일본대지진의 비극 후 5년 간 침묵 속에 침잠한 일본 사회의 풍경과 신음을 조심스럽게 조망한 책이다. 저자 이소마에 준이치는 문학, 종교학 등을 전공해 일본 종교학 및 역사학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인문학자. 대지진 직후부터 현장을 찾은 그의 노정을 담았다. 1~3장에서는 각각 ▦쓰나미로 폐허가 된 재난지역의 실태 ▦방사능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된 지역 ▦사자(死者)들을 향한 일본 내 진혼의식의 의미와 면면을 다룬다.
그가 담아낸 재해지역은 신산한 그늘의 연속이다. 곳곳에서 “연대”와 “힘내라”의 슬로건 아래 복구작업이 진행됐지만 방사능으로 수색대가 들어갈 수 없었던 이 지역에는 사체들이 한 달 가까이 방치돼 있었다.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귀환 곤란 지역’에는 시간이 갈수록 오염 토양을 담은 자루와 건물 잔해만 쌓였다.
방문한 어느 현장에서도 “피붙이를 포함한 눈 앞의 모든 풍경이 사라진” 경험이 없는, 철저한 외부인이었던 그는 주춤주춤 경청한 목소리와 지진 이후 쏟아진 증언집의 내용 등을 담는다. 비명조차 되지 못한 웅성임들은 몸서리치게 참담하고 모질다. “쓰나미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은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고 사실 남편과 함께 죽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라고 짧게 중얼거렸다.”(59쪽)
저자를 더 큰 비애에 빠뜨린 것은 저마다에게 이질적으로 적용된 망각의 속도다. “당시를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이제는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갈등, 소외, 체념이 더 근본적으로 사회 근간을 갉아 들어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집필을 “말이 되지 못한 생각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신불(神佛)에서 구원을 바라게 된” 이들을 위한 일종의 진혼의식으로 여겼다. 그는 이 진혼의식에서 망각, 회피, 시선분산, 화제 돌리기에만 몰두하는 일각의 비겁함에 주목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집단 망각이 후쿠시마 등 원전 지역처럼 “경제적 번영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데 이용돼 왔다는 대목이다. 동일본대지진이 드러낸 가장 참담한 현실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전후 일본사회의 번영을 지탱”해왔으며 “목소리가 되지 못한 소리들은 고도경제로 끓어오르는 대도시의 교성에 지워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전 설치와 그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지역을 일본 내 “식민지”로 정의한다. 도호쿠 지방에서 오래 활동해온 한 연구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내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후쿠시마는 식민지였고 지금도 식민지다’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도호쿠 지방은 도쿄로 쌀과 병사, 창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식자재와 부품, 전기를 공물로 보내고 보조금과 함께 유해시설을 받아들이는 곳이 되었습니다.”(155쪽)
상황이 이런데도 원전 위험과 관련된 비판적 발언은 ‘헛소문’, ‘비방’으로 정리되는 일본 사회를 보며 저자는 호소한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행복을 손에 넣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동일본대지진이라는 국지적 사건에서 전 세계인들이 배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숱한 사자와 산 자를 대신해 인간이 원전 앞에서, 쓰나미와 원전폭발로 모든 것을 잃은 타자 앞에서 한 없이 무력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썼다.
최근 함께 출간된 ‘끝이 없는 위기’(글항아리),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반비)도 동일본대지진 문제를 다룬다. 세계적 반핵 활동가이자 방사능 연구자인 헬렌 캘디콧이 엮은 ‘끝이 없는 위기’는 후쿠시마 재앙이 일본과 지구에 미친 영향을 주제별로 담아냈다.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은 2013~2014년 일본 6개 지역을 돌아가면서 개최한 사진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부속행사의 일환으로 한 좌담의 내용을 묶었다. 역사, 예술을 통해 타자의 경험을 연결하는 연대의 방안을 모색했다.
일련의 저술들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우리가 직면한 것은 방사능 식품 공포뿐이 아니라 것을 일깨운다. 이제 자문해야 한다. 인류는 이대로 내가 아닌 다른 인간에게 이런 비참을, 통제 불가능한 원전 위험을 계속 전가해도 좋은가. 과연 식민지는 사라졌는가.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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