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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겨루고 배우고… 중국의 ‘詩會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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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겨루고 배우고… 중국의 ‘詩會 문화’

입력
2016.03.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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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 '수계도권' 부분. 대표적인 시회인 난정아회는 무속 기복의식인 ‘수계’와 문학창작을 했던 모임이다. 한길사 제공
유숙 '수계도권' 부분. 대표적인 시회인 난정아회는 무속 기복의식인 ‘수계’와 문학창작을 했던 모임이다. 한길사 제공

시회의 탄생

강필임 지음

한길사 발행ㆍ364쪽ㆍ2만원

서구에 살롱문화가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시회(詩會)문화가 있다. 17세기 프랑스 살롱문화가 작품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비평에 방점이 찍혔다면, 시회문화는 말 그대로 모인 자리에서 즉석에서 시를 짓고 품평하는 즉 창작과 비평 모두에 방점이 찍혔다. 다만 장르는 말 그대로 시에 한정됐다.

시회문화가 형성된 건 위진시대부터다. 유학 경전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한나라 시대, 문학은 노래나 춤 같은 오락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인식이 위진시대에, 유학이 쇠퇴하고 그 자리를 노장사상이 대신하면서 ‘대전환’을 맞는다. 문학이 유학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자유롭고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조가 탄생, 문학이 입신양명에 도움이 될뿐더러 죽은 후에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조조의 아들로 위나라 황제에 오른 조비는 “문장은 나라를 경영하는 위대한 일이며, 영원히 썩지 않는 상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곧 문인집단을 만들어 권력기반을 삼고 연회에서 직접 시를 짓기도 했다.

간독(簡牘ㆍ필기용 나무쪽) 사용이 일반적이던 시기, 필기도구는 도필(刀筆ㆍ필기용 칼)과 널빤지였고 글자는 한 자 한 자 칼로 새겨야 했다. 그러니 문학적 구상을 즉석에서 문자화하기로 어려웠는데, 종이는 붓과 먹물만으로 즉석에서 문자화할 수 있고 이동도 수월해 공간 제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재능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조비의 등장은, 종이가 죽간을 본격적으로 대체하는 시기와 맞물려 시회를 빠르게 자리잡게 했다. 이후 남조 시대의 문화정치, 문벌사족의 몰락, 당나라의 과거제도와 천거문화 등으로 시회문화는 크게 확장된다.

한나라 말 건안 시기 조비가 문인을 이끌고 서월에서 가진 문인아회, 위나라 말 사마씨 집단의 공포정치에 눌려 초야에 묻혀 시를 지은 7인의 비주류 지식인 모임인 죽림아회(죽림칠현), 애첩 ‘녹주’로 잘 알려진 석숭이 서진 원강 6년(296년)에 문인 30명을 데리고 금곡원 별장에서 개최한 금곡아회, 국내에는 ‘왕희지체’로 알려진 회계태수 왕희지가 동진 영화 9년(353년) 이끈 난정아회 등이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시회다.

신간은 이렇듯 시회의 탄생 배경과 대표적인 시회, 그 일원들의 비화를 소개한다. 당대 최고 시인이었던 두보 역시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장안에 머물며 좌승 위제에게 천거를 청탁하며 시 ‘위 자승 어른께 받들어 올리다’를 지어 바치며 출사 길을 모색했다는 등 비화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회에서 쓰인 대표적인 시를 소개하고, 해설도 덧붙였다.

시회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은 중국의 정신문화로 남았다. 이를 테면 중국 지도부는 시회에서 쓰인 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은유하는 부시언지(賦詩言志ㆍ시를 건네 마음의 뜻을 말하다) 문화가 있다. 2006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대국으로 성장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신경전을 “언젠가는 모름지기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작품을 굽어보리라”는 두보의 시구를 인용하며 은유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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